문득 소중한 벗들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육십 평생 삶을 나누며 지금까지 추억을 함께 해 온 귀한 친구들이 여러 명 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꿈 많던 10대엔, 꿈 만큼이나 많은 사춘기의 갈등도 복병처럼 숨어 있었다. 체육 선생님을 짝사랑하던 친구 선희, 그녀는 종종 수줍게 상기된 얼굴로 사랑의 느낌에 대해서 말해주곤 했다. 여주인공이 백혈병으로 죽는 영화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안타까운 결말이 가슴 아파도 그런 사랑이 부럽다던 그 친구는 막연하나마 사랑에 대한 느낌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그때를 추억하면서 내 마음은 단발머리 그 시절로 떠나는 날갯짓에 설렌다. 생각 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했던 풋풋하던 그때, 그녀와 함께 많은 꿈을 나누었던 시절이 새삼 그립다.
지옥 같은 입시 준비의 시간을 보내고 대학에 입학하고 만난 벗은 같은 과의 희자다. 춘천이 고향인 그녀는 수재였는데, 전액 장학생으로 우리 학교에 왔다. 도서관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책임감 있게 자기 일에 몰두하던 그 친구는 요즘 말로 FM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잠시 어려움을 겪을 때, 그녀는 ‘너는 잘 할 수 있어’라며 내게 힘을 실어 주곤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좌절의 무게가 그녀의 말 한마디에 깃털처럼 가벼워졌던 기억이다. 정말 격려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 후, 첫 직장에서 만난 친구 민영이, 그녀는 참 예뻤다. 그 친구는 어설픈 사회 초년생이 난처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잘 챙겨 주었다. 그녀는 아주 싼 값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종종 풋풋한 바람을 쐴 수 있는 근교의 강가로 안내하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한국을 방문하면 자그마한 섬들이 잔잔하게 표류하는 바닷가를 데려다주기도 하고,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녹음이 가득한 숲으로 안내해 준다. 책 읽는 것을 즐기는 그녀는, 배려해주면서 함께 어우러져 사는 인생의 따스함을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는 친구다.
그리고 20대 중반 미국에 와서 우연히 만난 친구 은미, 그녀는 한국에서 다니던 직장의 입사 동기였다. 20대 초반, 함께 일할 때는 눈인사 정도 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미국에 온 지 7년 만에 너무도 뜻밖에 그녀가 일하는 세탁소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 우리 아들이 백일 정도 되었을 때니까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갔나 보다. 그녀는 미국에서 보낸 대부분의 세월 속에 함께 있어 왔다. 그 친구는 무슨 얘기든지 잘 들어주었다.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 큰 소리로 깔깔 웃어주고, 힘들다는 얘기를 하면 안타까운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한때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우울증세가 계속된 적이 있었다.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꽉 찬 가슴엔 아무런 의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몇 달을 지속하자 친구는 ‘어떻게 기운을 좀 내봐’ 하면서 울먹였다. 그때, 마음을 나누어주는 벗이 있음에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모른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편해지고 기운도 차릴 수 있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 얘기를 하다 보니 정말 소중한 벗들이 많다. 무슨 이유인지 온몸의 관절이 아플 때가 있었다.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어이구~ 어이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다가 혹시 걷지도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때 ‘걱정하는 시간 만큼 무조건 걸어!’라고 일침을 놓았던 친구 윤영이, 그 이후에 거의 매일 40분 조깅을 꼭 해오고 있다. 물론 덕분에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두세 달에 한번 골로 앓던 몸살도 없어졌다. 조깅이 정말 좋기는 좋은 것 같다. 또, 언제나 긍정적인 데니 엄마도 있다. 딸아이의 교회 고등부 친구였던 데니를 통해서 알게 된 그녀는 항상 웃는 얼굴이다.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를 통해 웃음이 주는 풍요로움을 배운다. 데니 엄마는 ‘아니다, 또는 안된다’는 부정어를 절대로 쓰지 않는다. 대신에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제 생각은 이런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말한다. 상대의 기분을 배려해주는 그녀와의 대화는 항상 유쾌하다.
그리고 또 있다. 언제나 씩씩한 친구 고은이, 그녀는 평생 벌은 많은 돈을 계속되는 부동산 침체로 몽땅 날렸다. 하지만 그래도 건강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며 여전히 열심히 산다. 그녀를 통해 오뚝이 인생을 배운다. 그리고 휴게실을 잘 읽었다면서 종종 전화해 주시는 독자님들의 격려 전화도 무척 큰 힘이 된다. 그러고 보니 40년 넘도록 희로애락을 함께 한 남편도, 부족한 언니를 챙겨 주는 동생들, 때로는 엄마보다 더 철이 들은 딸과 아들,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인 친정엄마, 모자란 며느리 칭찬해주시는 시어머니, 그리고 종종 안부가 궁금한 주변의 이웃들 모두가, 오늘을 힘있게 살게 해주는 고마운 벗님들이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지난 30년 동안의 절친한 친구로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모두 좋은 얘기려니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은 내용이 많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친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말을 듣고서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섭섭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무척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얼마나 많았는지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고, 좀 더 배려하는 연습을 많이 해서 성숙해져야겠다는 다짐도 생겼다. 만약 그 친구가 충고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마음도 모른 채, 우리의 30년 우정은 빈 쭉정이처럼 말라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말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툭 터놓고 지내는 친구를 가졌다는 생각에, 숨겨 놓은 보물을 다시 꺼내어 보는듯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엔 세 종류의 벗이 있다. 첫째는 꽃과 같은 친구다. 꽃이 활짝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조건이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가 바로 꽃과 같은 유형의 친구다. 둘째는 저울과 같은 친구다. 저울은 무게가 많은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는 물건이다. 그와 같이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친구가 바로 저울과 같은 친구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산과 같은 벗이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산은 아무 움직임 없이 조용한 것 같지만, 그 산은 온갖 나무와 풀, 그리고 수없이 많은 새와 동물들을 담고 있다. 언제나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모든 것을 품고 감싸주는 산처럼, 푸근하고 한결같은 편안함을 주는 든든한 친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다. 나이와 관계없이 마음이 통한다면 벗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 같다. 부족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런데도 지금까지 인연을 계속 이어주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 모두가 산과 같은 소중한 벗들이기에 고맙기만 하다. 모두 나의 귀한 친구들이다.
여름이 푸르게 익어간다. 숲은 큰 나무와 작은 나무들, 키가 큰 들풀과 몸을 낮추어 바닥으로 앉은 풀잎들, 그리고 더 낮게 자리를 잡은 이끼로 가득 차 있다. 누가 누구랄 것 없이 서로 어우러져 넉넉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이름 모를 새들이 예쁜 노래를 하며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닌다. 귀여운 다람쥐와 귀를 쫑긋 새운 토끼들이 오솔길을 따라 나들이에 나선 초여름 풍경이 평화스럽다. 여름 더위를 실은 후덥지근한 바람이 숲에 다다르면, 그 바람은 이내 상큼하고 시원한 산들바람으로 바뀌게 된다. 여름 숲에 사는 그들은 서로에게 너무도 소중한 벗들임에 틀림이 없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를 보듬고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잠언 13장 20절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와 빌립보서 2장 4절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라는 성경 말씀처럼, 베풀고 격려하면서 삶의 무게를 사랑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7월이 되면 좋겠다. 월간 세탁인 독자 여러분을 참~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