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넣고 쳐다볼 필요도 없어졌다는 웨트클리닝 전문가 공화열 사장

웨트클리닝 전문가는 큰 대야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손꼽히는 웨트클리닝 전문가 손명식 사장은 “싱크대 하나면 30만 불 매상도 거뜬하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웨트클리닝 전문가가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급한 일이 생겨 나가야 한다면? 뉴저지주 스프링필드에서 탑스 클리너를 운영하고 있는 공화열 사장은 웨트클리닝 초기 멤버로 누구나 인정하는 웨트클리닝 전문가이자 일벌레이다. 그런 그가 요즘엔 “옷 넣고 나서 쳐다볼 필요도 없다”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02 월드컵 도중 도미
공화열 사장은 한국에서 제조 공장을 운영하며 소위 “기름밥”을 먹다가 2002년 미국에 왔다. 형 따라 먼저 미국에 와계신 어머니 초청 덕분.
“원래 미국을 자주 오갔는데, 미루고 있던 이민 길에 오른 겁니다. 그해 월드컵 결승은 미국에서 봤습니다.”
공 사장은 사실 미국에 가면 세탁소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80년대에 미국에 온 친구가 뉴욕에서 홀세일 공장을 크게 하고 있는데, 미국에 올 때마다 그곳을 방문하며 계획을 세웠던 것.
그러다가 한 4년 정도 미국에 오지 않다가 2002년 미국에 와서 보니 알고 있던 세탁소 시장 상황이 많이 바뀐 것을 발견했다.
“오우너 파이낸싱도 없고, 매상의 120%를 요구하는 겁니다. 이건 아니다 싶었죠.”
마침 둘째 형님이 HVAC 기술자로 일하고 계셨기 때문에 나도 그 일이나 배워야겠다 싶어 형과 함께 일하면서 HVAC 사업을 구상했다. 그런데 일을 다니다 보니 한인 손님들이 “수리 전과 수리 후가 아주 다르다”라는 걸 알게 됐다.
“이러다가 손님과 싸우기만 하겠다 싶었죠. 그래서 다시 세탁소로 맘을 돌려 잡았습니다.”
그래서 한 세탁소에서 배달 일부터 하면서 인수할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한 1년 반 정도 찾다 보니 지금의 탑스 클리너를 만났고, 맘에 들어 바로 인수했다. 그게 2006년이었다.


처음부터 드라이클리닝과 웨트클리닝 병행
탑스 클리너는 먼저 주인이 드라이클리닝을 하면서 물빨래를 많이 하고 있었다. 공 사장 역시 그동안 물빨래를 계속 “연마”하고 있었기에 아주 반가웠다.
“다른 세탁소에서 일할 때 클리닝 연습을 하려 해도 스팟터가 드라이클리닝을 할 기회를 안 주더군요. 그래서 스팟터가 하기 싫어하는 물빨래 연습만 실컷 했습니다. 물론 당시엔 면이나 폴리에스터 정도나 빨았지 감히 드라이클리닝 옷은 꿈도 못 꿨습니다.”
공 사장은 내 가게를 마련한 후에도 론드리 위주로 물빨래를 했다. 그러다가 웨트클리닝이란 단어를 접하게 됐다.
“그때 웨트클리닝을 가르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6백 불 주고 배웠다기에 물어봤죠. 그랬더니 손가락도 안 들어가게 옷을 꽉 채우고 빨란다는 겁니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 도전욕심이 확 생겼습니다.”
공 사장은 그때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웨트클리닝을 시도했다. 어디 배울 데도 없으니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었다.
처음에는 모두 손세탁하면서 연구를 했다. 그러다가 자쿠지 공기 방울이 좋겠다 싶어 사다가 해봤더니 생각보다 잘 됐다. 문제는 말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궁리해도 방법이 없어 자쿠지 위에 각목으로 기둥을 4개 세워놓고 널어 말렸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인스펙션이 나왔는데, 기둥 4개를 세우면 구조물이므로 퍼밋을 받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타운홀에 가서 물어보니, 자기도 그게 무슨 퍼밋인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긴 얘기 결론부터 말하면, 자쿠지와 기둥을 다 들어내고, 사진 찍어 보여 줬습니다. 그렇게 반짝했던 자쿠지 시절은 끝났습니다.”
저는 고달픈 걸 좋아합니다
공 사장은 원래 가게에 있던 펄크 머쉰을 2011년 프리마 하이드로카본 머쉰으로 교체했다. 기계도 낡았고 마침 주 정부에서 지원금도 줄 때라 새 기계를 장만한 것. 그러면 편하게 일하면 됐을 텐데, 계속 웨트클리닝을 고집했다.
“그때만 해도 웨트클리닝이 자리 잡기 전인데 저는 양복 재킷만 빼고 거의 모든 옷을 웨트클리닝으로 처리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한 70%는 웨트클리닝으로 했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고달픈 걸 좋아합니다.”
공 사장은 자쿠지 다음에 유니맥 워셔로 웨트클리닝을 했다. 유니맥에 미케니컬 액션을 최소로 줄인 W6란 싸이클이 있어 이를 이용했다고. 문제는 탈수를 할 때 이리 저리 돌며 옷을 재배치하고 싶은데 그걸 못했다. 그래서 기계를 개조해 원하는 액션을 만들어냈다.
공 사장은 제일 좋은 탈수 방법을 찾기 위해 옷 무게를 재면서 연구했다고 한다. 30 파운드 한 로드를 빨고 나면 무게가 45파운드가 된다. 그렇다면 절반이 물이란 뜻.
“유니맥엔 4단계 탈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250rpm으로 천천히 돌리면 물의 30% 정도가 나갔습니다. 그리고 400 rpm으로 돌린 다음 다시 무게를 쟀습니다. 500 rpm으로 탈수를 더 하니 물의 60% 정도가 빠지더군요. 한 번에 3분 이상 탈수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최적의 탈수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공 사장은 웨트클리닝한 옷을 특이하게 드라이클리닝 머쉰에서 말렸다.
“드라이클리닝 머쉰은 드럼의 지름이 드라이어보다 작습니다. 그래서 낙차가 적어 옷에 가해지는 액션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웨트클리닝한 옷을 그렇게 대부분 바로 말렸지만, 재킷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늘 널어 말리다 보니 일이 너무 힘들었다. 드라이클리닝을 하면 되는데 그걸 안 했다.
“전 고달픈 걸 좋아한다니까요. 그러다 보니 집사람은 웨트클리닝에 완전히 질린 사람이 됐습니다.”


프로그램이 없다는 기계 처음 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유니맥을 15년 정도 사용하니 기계를 바꿔야 하는데 마땅한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대중적으로 많이 판매되는 웨트클리닝 머쉰을 봤지만, 패널을 뜯어보니 철판을 접어 골조를 만든 허접스러운 공법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그렇게 큰 회사가 그렇게 싸구려로 기계를 만든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제가 기계를 만들던 사람인데 그게 성에 차겠습니까?”
그러다가 광고를 통해 아쿠아맥스 웨트클리닝 시스템을 만나게 됐다.
“전화해 물어봤죠. 기계 프로그램이 어떻게 돼 있냐고요. 그런데 프로그램이 없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 사용자가 원하는 그대로 프로그램을 한다는 겁니다. 바로 내가 듣고 싶었던 답이었습니다.”
공 사장은 기계를 개조할 정도로 자기 주관이 뚜렷해 웨트클리닝 기계는 프로그램이 쉽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해왔는데, 그런 말을 하는 장비 회사를 처음 본 셈이다.
가서 기계를 보니 헤비 듀티 프레임에, 고온용 베어링과 4중 서스펜션, 강력한 에어 버블 액션, 게다가 인젝션 펌프가 무려 7개. 바로 결정을 했고, 지난 3월 4일 설치를 마쳤다.

이제 신경 쓰지 않아 너무 편하다
공 사장은 아쿠아맥스 웨트클리닝 시스템을 놓고 나서 재킷까지 모두 드라이어에서 말리고 있다. 아무리 연구해도 해결하지 못한 재킷 드라잉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된 것이다.
“아쿠아맥스에서 제공하는 비누와 컨디셔너, 특히 컨디셔너가 아주 맘에 듭니다. 솔직히 예전엔 신경 쓸 일이 많았는데 이젠 그럴 게 없습니다.”
앞서 소개했듯 공 사장은 에어 버블 액션을 이용하려 자쿠지 목욕탕으로 웨트클리닝을 시도했던 사람이다. 아쿠아맥스의 WAVE 공기 방울 액션을 보니 사라졌던 옛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공기 방울 세탁기란 것도 있었지만, 제 눈엔 소비자 눈속임일 뿐입니다. 하지만 아쿠아맥스의 WAVE 기술은 눈에 보이는 차이를 내더군요. 공기 방울 액션이 정말 맘에 듭니다.”
공 사장은 여전히 더 나은 웨트클리닝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아쿠아맥스의 프로그램을 이리 저리 수정하며 차이점을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고달프게 일하진 않는다.
“아쿠아맥스는 옷을 넣고 나서 쳐다볼 필요가 없습니다. 기계와 케미컬이 다 알아서 해줍니다. 제 ‘신세’가 확실히 더 편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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