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주관하고 통치하는 최고 권력자는 누구일까?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하나의 칼도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생명을 건지는 수술 도구가 되고 요리사의 손에 쥐어지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가 되지만, 강도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무서운 흉기로 전락한다. 이처럼 칼이 어떤 도구로 사용되느냐는 칼 자체의 결정이 아니고 그것을 쥐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의학계에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위장병 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새로 개발한 특별 약’을, 다른 쪽에는 ‘기존의 보통 약’을 투약했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검사해 보니 예상대로 특별 약을 먹은 집단의 위장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 약의 효과가 입증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집단에 지급된 약은 모두 치료 효과가 없는 동일한 성분의 영양제였다. 약 그 자체의 효능이 아니라 ‘나아질 것’이라는 환자의 심리적 상태와 긍정적인 기대감이 실제 치료 효과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것을 의학계에서는 가짜 약이란 뜻의 플라시보를 써서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 부른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해를 끼친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가 그것이다. 혈액응고방지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장기 처방받은 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만 위장 부작용 가능성을 경고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주의사항을 전하지 않았다. 실제 내시경 결과, 경고를 듣지 않은 그룹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반면, 주의를 들은 그룹은 듣지 않은 그룹보다 3배 이상 심한 통증과 부작용을 호소했다. 부작용에 대한 불안과 염려라는 마음의 상태가 실제로 병을 불러온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와 노시보 효과는 모두 사람의 마음가짐, 태도, 감정의 상태가 치유와 삶에 얼마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준다. 한 심장병 전문의는 경쟁심이 강하고 욕심이 많은 성격이 느긋한 성격보다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분노를 억압하면 고혈압이나 뇌졸중,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계속되는 대외적 악재와 경제적 어려움, 미래에 대한 염려로 사람들의 마음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 대형 금융위기나 경기 침체에 대한 예측 보도를 접할 때마다 지금까지 견뎌온 것도 힘겨웠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된다. 재미있는 우리가 잘 아는 예화가 있다. 수풀 속에서 길을 잃은 원효 대사가 극심한 갈증과 공포 속에서 바위 웅덩이에 고인 물을 발견하고 아주 달게 마셨다. 기운을 차린 그는 날이 밝은 뒤 자신이 마셨던 물이 사실은 해골에 고여 있던 물이었음을 알고 극심한 구토를 일으켰다. 객관적인 상황과 물의 성분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었다. 변한 것은 오직 원효대사의 마음뿐이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머금었던 물이 감로수가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며칠 전, 가깝게 지내던 이웃이 6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슬프고 섭섭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인생은 참으로 일장춘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분이 이렇게 일찍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열심히 살았던 세상과 이별하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아마 하루하루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떠나야 할 그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인생은 행복하게 살기에도 너무 짧다.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삶을 살면서 걱정과 근심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너무나 아깝다. 현실에 직면하면 이론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속이 온통 여러 가지 걱정뿐인데 어떻게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냐고 반문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당면한 상황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 소용돌이에서 헤쳐 나올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항해사가 목적지를 향해 키를 맞추고 바다를 나아가듯, 우리 마음의 키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방향에 맞추고 노를 저어야 한다. 먹구름이 끼고 폭풍이 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개고 순풍이 불어오는 법이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노를 저으면 반드시 목적지 항구에 도착한다.
이른 새벽 출근길에서 바라보는 샛별에서 희망을 찾고, 늦은 저녁 퇴근길 하늘에 총총한 별빛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본다. 세탁소에서 맡긴 자켓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결혼반지를 돌려주었을 때 감격하여 울음을 터뜨리던 손님,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다니던 꼬마가 커서 가정을 이루고 인사를 왔을 때의 대견함, 오염된 정장을 말끔히 세탁해 놓았을 때 감탄사를 연발하던 고객의 환호 등… 일상 속에는 감사할 일들이 참 많다.
어린 시절 개울에서 올갱이를 잡던 일, 달래와 냉이를 캐다 친구들과 노느라 잃어버린 바구니를 찾느라 들판을 헤매던 기억, 황혼이 질 때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저녁 밥 짓는 냄새, 수학여행 가서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하다 바라보던 일출, 시내버스 표 한 장으로 종점에서 종점까지 왕복해도 즐거웠던 데이트, 그러고 보니 행복했던 기억들도 참 많은 것 같다.
스트레스를 뜻하는 ‘stressed’를 반대로 뒤집으면 너무나 달콤한 디저트인 ‘desserts’가 된다. 즉,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순간에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기쁨과 슬픔 중 어느 것을 마음에 품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 맑고 푸른 하늘, 아름다운 꽃 한 송이, 누군가의 맑은 눈동자와 따뜻한 말 한마디를 품고 살면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다. 좋은 것을 품고 살면 좋은 삶을 살게 된다. 아침저녁으로 소슬한 바람이 불고 푸르던 나무들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 계절이다. 나무는 다가올 추운 계절을 걱정하기보다 계절의 변화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푸른빛을 거두고 붉은빛을 꺼내 입어 불타오른 뒤, 그것마저 미련 없이 털어내고 빈 몸이 된다. 시린 겨울을 보내고 나면 반드시 따뜻한 봄이 온다는 희망과 더 강건한 초록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는 잠언 4장 23절의 말씀처럼, 마음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 삶의 가장 큰 지혜이다. 우리들 마음속에 행복과 희망이 가득하여, 흔들리지 않는 넉넉함으로 풍성한 9월을 맞이하시기를 소망한다.
월간세탁인 독자님들을 참~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