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우리 집 뒷마당을 찾아오는 이가 있다. 그는 우리 주방에 불이 켜지면 싱크대 너머 바깥 창문가로 올라온다. 그리고 주방 뒷문이 열리고 사과 한 개가 던져지기를 두 손을 모은 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는 다람쥐다. 람지는 우리 가족이 그에게 붙여준 예쁜 이름이다. 람지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년 전쯤 전 초겨울에 우리 집 뒷마당을 드나드는 다람쥐들이 있었다. 아침에 먹은 사과 껍질을 던져 주었더니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뒷마당에 던져 준 사과 껍질은 다람쥐들의 몫이 되었다. 따뜻한 봄기운이 돌자 다람쥐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지난 해 초겨울 어느 날, 목에 노란 털이 있는 다람쥐 한 마리가 우리 주방의 창가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날씨는 춥고 아무것도 못 먹었을 것 같아 사과 한 개를 던져 주었더니 냉큼 집어서 나무 위로 올라가서 맛있게 먹었다. 우리 주방은 북쪽에 있어서 주방 일을 하려면 낮에도 전깃불을 켜야 한다. 불이 켜지면 람지는 어디엔가 있다가 불현듯 나타나서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으고 우리를 바라본다. 람지가 뒷마당으로 올 때마다 먼저 이름을 불러주고 사과를 던져 주었다. 처음에는 뒷문을 열면 도망갔다가 문을 닫히면 사과를 챙겨갔지만 언젠가부터 마치 우리를 믿고 있다는 듯이 뒷문을 열어도 전혀 도망가지 않았다. 그해 겨울동안 뒷마당의 람지를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 되었다. 람지는 매일 던져주는 사과를 먹고 포동포동해졌고 털도 윤기가 흘렀다. 또 겨울이 지나고 쌓였던 눈이 조금씩 녹기 시작하자 람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혹시 살쾡이에게 잡혀 먹었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지난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이 지나고 얼마 전에 첫 눈이 올 때까지도 람지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람지가 우리 주방 창문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털은 푸석하고 몸은 많이 말랐지만 목 아래에 노란 털이 있는 것을 보니 람지 같았다. 사과를 던져 주려고 뒷문을 열어도 도망가지 않으니 람지가 확실했다. 거의 일 년 만에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우리를 기억하고 돌아온 람지가 무척 반가웠다.
람지를 보면서 겨울이 오기 전까지 그는 지난 한해를 어떻게 살아왔을까 하는 물음이 생겼다. 여름엔 나무에 올라가서 뽕 같은 열매를 따먹고 가을엔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나 사과 같은 열매를 주워 먹었을 것이다. 들판엔 온갖 열매로 먹을 것은 풍성하지만 호시탐탐 다람쥐들을 노리는 라쿤이나 오소리들의 밥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이 도처에 깔려 있다. 어쩌면 한 끼 식사를 찾아 나설 때마다 매번 자신들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불안한 삶임에 틀림이 없다. 반면에 우리 집 뒷마당은 람지에게 어떤 곳일까. 라쿤이 넘어 올 수 없는 철망이 있어서 항상 안전하고 언제든지 주방 창문 앞에 서기만 하면 계절에 관계없이 항상 맛있는 사과가 풍성하게 공급된다. 문득 내가 람지라면 절대로 이곳 뒷마당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들판을 헤매다가 순식간에 하늘에서 내려온 솔개에게 희생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뒷마당 근처에서 즐겁게 잘 지내다가 주방에 불이 켜지면 창문 앞에 설 것이다. 람지에게 이곳 뒷마당은 언제나 안전이 보장되고 맛있는 양식이 공급되는 천국 같은 곳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축복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뒷마당에 오면 보장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뒷마당으로 오는 일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것과 너무도 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람지는 그 지혜를 이미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백신이 보급되고 있지만 우리 일반인들이 접종할 수 있을 때까지는 몇 개월이 더 걸릴 예정이다. 접촉을 피해야 하는 전염병인 까닭에 식품점과 필수 비즈니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개점 휴업상태다. 그 여파로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세탁소 비즈니스도 언제쯤 정상화 될지 추측조차 어렵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우리가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기도드리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치 람지가 주방 앞 창문에 와서 우리에게 두 손을 모으는 일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오면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들이다.
- 예레미야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 시편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 빌립보서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요한복음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요한일서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 데살로니가 전서 5:16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멘
비록 코로나로 인해 고통스러운 일도 많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의 시간 중에서 행복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행복이 미래에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는 허상일 수도 있다. 지금 당한 모든 어려움이 끝나면 행복이 다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때가 되면 또 다른 어려운 일들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핑계로 일찍 은퇴를 해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아담한 집을 얻고 텃밭이나 가꾸며 소일할 계획을 세웠는데 갑자기 말기 암 선고를 받았다는 마음 아픈 소식을 접했다. 반면에 코로나로 인해 많아진 시간에 성경말씀도 더욱 읽고 암송하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동안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가족이나 이웃들을 살피고 나누었더니 오히려 천국에 사는 듯한 감동을 누렸다는 따뜻한 얘기도 자주 들린다.
속담에 행복은 자기가 입은 옷의 호주머니 안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행복은 반드시 행복해지기로 결심한 사람에게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스승이 바구니 안에 꽃을 담고 제자들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바구니인가?” 제자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꽃바구니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스승은 꽃을 들어내고 생선을 바구니에 담고 똑같이 물었다. 제자들은 “생선 바구니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스승은 “맞다. 똑같은 바구니이지만 꽃을 담으면 꽃바구니요, 생선을 담으면 생선 바구니이니라.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 안에 불안과 불평을 담고 있으면 불행한 사람이지만 그 안에 향기 나는 사랑과 감사의 꽃이 담겨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향기 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꽃임이 확실하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암송하고 그 말씀으로 기도할 때 우리 마음은 성령 충만으로 채워져 감사의 향기로 차오르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길고도 어두운 터널 같은 코로나의 시련이 곧 끝나기를 기대하지만 상황에 관계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와서 그분이 공급해주시는 평안과 행복을 누리는 복된 2월이 되기를 소망한다.
월간 세탁인 여러분을 참~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