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독한 감기가 찾아왔다. 목도 많이 부어서 말도 못 하고 음식도 넘어가지 않았다. 가슴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운 기침이 계속되었다. 며칠을 버티면 되려니 했는데 이제 기관지에서 쌕쌕 소리도 났다. 진작 병원에 갈 것을 후회하며 의사를 만났다. 항생제를 처방해 주면서 약이 매우 독하니 꼭 밥을 먼저 먹은 후에 약을 먹으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항생제를 먹을 때는 식사 후에 먹는 것이 먹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의사 선생님이 너무 자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약을 먹고 한나절이 지나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번 항생제는 정말 지독했다. 모든 음식의 맛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물론 감기가 들면 입맛이 없어진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음식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너무 달랐고 황당했다. 생물 시간에 배웠듯이 음식의 맛은 혀의 맛 돌기에서 4가지 달고, 짜고, 시고, 쓴맛을 알게 하고 후각으로 음식의 냄새를 감지할 때 두뇌의 자율 신경이 맛있다고 느끼게 한다. 그런데 후각이 통째로 정지해 버린 것이다. 어느 음식도 예외가 없고, 좋은 향수든, 쓰레기 악취든 아무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 모든 음식은 4가지 맛을 가진 동일한 식료품일 뿐이었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게 해 주는 커피도 그윽한 커피 향이 빠지자 검고 쓴 물에 불과했다. 아프다고 친구가 일부러 멀리까지 가서 사다 준 찹쌀 탕수육도 달고 쫄깃한 부드러운 껌 같았다. 얼큰한 라면 하나 끓여 새콤하게 잘 익은 김치랑 먹으면 혹시 맛이 돌아올까 했지만, 그것 역시 맵고, 시고, 짭짤하고 질깃한 배추 줄거리일 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맛있는 음식 먹는 맛에 산다는 선배의 말에 100% 공감한다고 했던 내가 끼니마다, 이렇게 맛없는 음식을 질겅질겅 씹어야 하는 일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때가 돼서 배에서 꼬르륵 신호가 오면 아무 감동 없이 마치 자동차 개스 뚜껑을 열고 기름을 넣는 행위와 비슷하게 음식을 입에 넣고 껌 씹듯이 씹은 지 일주일째다. 약은 어제까지 모두 먹었고 오늘부터 약을 먹지 않았으니 혹시라도 후각이 돌아올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지금 막 내린 커피에 아무리 코를 대고 킁킁거려도 무정한 내 후각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어떤 느낌인지 공감하고 싶으신 독자님은 코를 손으로 꼭 쥐고 음식 맛을 보면 됩니다^0^).

삶이 우울해지는 것이 잠깐인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욕도 열정도 덩달아 사라졌다. 문득, 영적 후각을 잃는 것이 신체적 후각을 잃은 것과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것인지, 아름다운 것인지, 하고 싶은 것인지, 갖고 싶은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삶은 무료해질 수밖에 없다. 영적 후각을 잃으면 서서히 열정도 소멸하기 시작한다. 열정을 상실한 삶은 매우 지루하다. 하지만 지루하게 살기엔 우리의 날이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구나 병원 신세를 안 지고 건강한 몸으로 살 수 있게 보장된 날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전혀 모른다. 다들 그럭저럭 사는 듯이 보여도 허송세월하는 사람과 열심을 내는 사람은 구별된다. 그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자기 계발을 하고, 남을 돕고, 봉사활동을 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이때 값진 삶으로 이끌어 주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열정이다. 열정이 없는 자기 발전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작거나 크거나 간에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열정이다. 열정은 사람들을 용기로 가득 채워준다. 그것은 삶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기쁘고 충만한 감동을 동반시킨다.

열정이라는 말은 영어로 ‘passion’ 과 ‘enthusiasm’이 있다. Passion은 라틴어에서 고통, 아픔이라는 의미의 ‘passio’를 어원으로 갖고 있다. 즉, 열정을 위해서는 견뎌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력, 참을 성 같은 것이다. 또한 Enthusiasm은 그리스어 ‘엔테오스’(entheous)에서 온 것인데, ‘엔테오스’는 신(theos)이 자신 안(en)에 들어와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신에게 완전히 사로 잡힌 듯 열심을 다하는 것이다. 두 단어를 합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어떤 어려움이라도 잘 견디며 열심을 다하며 절대자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단 한 번뿐인 인생,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열정은 자기 안에 감춘 보석을 찾는 것과도 같다. 그것은 한 번에 찾아지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사람마다 열정을 품고 싶은 일들이 모두 다를 것이다. 한 친구의 열정을 소개하고 싶다. 그 친구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열심을 품었다. 교회 문턱을 수십 년 밟으면서도 교회 문을 나서면 세상 사람들과 다름이 없는 자신에게 회의를 느꼈다. 또한, 자신보다도 훨씬 지적이고 성공한 삶을 사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 열심인 것이 매우 궁금했다. 그는 정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고 자신도 그 하나님을 믿고 싶은 갈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성경을 읽고, 믿음의 영적 지도자들의 설교를 듣고, 찬양곡의 가사들의 뜻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어느 순간, 전능자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어느 햇빛 좋은 봄날, 떡갈나무 주변에 가을에 떨어졌던 떡갈나무 씨가 초록빛 새싹으로 올라오는 것도 보게 되었다. 떡갈나무 밑에는 작지만 떡갈나무잎을 똑같이 닮은 새싹들이 수두룩했다. 지금은 그들이 작은 새싹이지만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면 하늘을 덮는 큰 나무로 자라나게 된다는 것이 너무도 경이로웠다. 어떻게 씨앗 혼자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누군가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모든 씨앗에는 생명이 있다. 그 안에 생명을 주관하는 유전자가 들어있다. 그 친구는 그 유전자를 만든 절대자, 즉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씨앗에 생명이 있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대단한 발견으로 다가왔다. 그는 하나님을 더 많이 알기 위해 열정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 그 친구의 삶은 통째로 변했다.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기쁨은 삶 전체에 가득 차게 되었다.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인간관계, 가족관계는 따뜻함과 사랑으로 넘치고, 직장에서도 즐겁게 일을 하고 실적도 올라 승진도 했다. 종종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일이 잘 되고 못 되는 것과 관계없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어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의 얼굴은 늘 평안해 보였고 따뜻한 미소가 언제나 잔잔한 물결처럼 퍼져 있다. “사람들은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니 이곳도 천국입니다.” 그 친구의 말이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이 그 친구를 부러워한다. 내가 보기에도 그가 누리는 현재의 기쁨, 평안함에는 분명 세상의 것들과 너무 다른 그 무엇이 있어 보인다. 그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처음부터 컸던 것은 아니다.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알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별 진전이 없는 듯했지만, 로마서 1장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라는 성경 말씀대로 어느 순간 우연히 자신의 눈에 띈 떡갈나무 새싹을 보면서 확실히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믿음은 마치 서서히 물이 더워지다가 어느 순간 끓기 시작한 것과 같다. 물이 끓고 수증기가 발생하면 그것은 거대한 기관차를 끌 힘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증기 계기가 섭씨 100도가 되기 전에는 엔진이 단 1센티도 요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지근한 물로 삶이라는 기관차를 움직이려 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산다는 것은 단순히 숨 쉬고, 먹고, 자고 하는 생명 유지 개념이 아니라, 무엇인가 사람이 추구하는 것을 획득해 내는 고귀한 활동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감각과 기능, 그리고 기관을 이용하는 일이며 생동감으로 퍼진다. 루소는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이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가장 보람있게 살아내는 사람, 즉, 열정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무엇에 열정을 쏟을 것인가? 이제 그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열정은 사람에게 꿈을 꾸게 합니다. 계획을 세우게 만듭니다. 이루어내게 도와줍니다. 열정 없이는 아무리 위대한 비전, 거대한 꿈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영혼의 불꽃처럼 안에서 타오르는 에너지, 그 무한대의 힘이 열정입니다. 열정의 가장 무서운 적(敵)은 태만과 자포자기입니다. 좋은 글 중에서~

독한 감기를 앓으면서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 것은 큰 축복이었다. 60 고개가 넘어간 이후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난다. 얼마 전까지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던 67세 되신 분이 급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힘겨운 투병을 시작했다. 하루하루 수혈을 하면서 간신히 삶을 연장하고 계시다. 이번 가을에는 그동안 미뤄왔던 가족과의 여행과 선교지도 방문할 계획을 세웠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며 후회하셨다. 2개월 후에 골수 이식을 하여 회복될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면서 지금 건강하다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고 단언하셨다. 우리는 모두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분명한 것은 마지막 날이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늦기 전에 자신 안에 무심히 방치해 놓은 열정들을 모아 뜨겁게 타오르게 해야 할 때다. 어물어물 대충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에베소서 5장 15절 말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까라 때가 악하니라”라는 성경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내재된 열정들을 양육 간에 복된 삶으로 전환하는 11월이 되면 좋겠다.

월간 세탁인 독자님들을 참~~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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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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