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이불을 살포시 덮고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들판이 아름답다. 나뭇잎을 모두 털어낸 나무들이 떨고 있는 것이 몹시도 안쓰러운 듯 나뭇가지마다 한 자락씩 포근한 눈 솜이불로 감싸주고 있는 듯한 모습이 마치 사랑하는 자식을 품에 안은 엄마의 따스한 마음처럼 느껴진다.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로 거리는 더욱 썰렁해진 것 같다. 그런데도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장난감을 구경하는 어린아이들의 표정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예쁜 불빛으로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오색등과 현란한 장식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코로나로 인해 물가는 치솟고 세상은 점점 살기 어려워진다는 소식, 전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하면서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는 것도 마음을 어렵게 한다. 열심히 살려고 애썼는데 별로 큰 결실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한 것도 같은데 때로는 섭섭함으로 되돌아와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못난 남편 만나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의 거칠거칠한 손의 메마른 느낌, 저희들 잘되라고 잔소리 좀 했다고 삐쳐서 눈길도 안 마주치려는 아이들, 점점 힘이 든다더니 어느 날 갑자기 남편과 아내에게 들이닥친 병환,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순조롭고 잘 되었을 때도 많이 있었다. 아파트에서 살다가 비즈니스가 잘 되어서 집을 사서 이사하고 새 차를 산적도 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타서 기쁜 적도 있었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고 부모님께 용돈을 두둑이 드리는 자녀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픈 날보다는 건강한 날이 더 많았고 우울한 때 보다는 즐겁게 웃는 때도 자주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삶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우울해질 수도 있고 기뻐질 수도 있는 것 같다.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된 바람이다. 또한 행복의 기준은 매우 다양하므로 어떤 특정한 한 가지만을 행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남의 밥에 콩이 더 커 보이듯이 다른 사람이 볼 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제로 알고 보면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행복할 조건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이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이처럼 행복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음에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근심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때 어쩌면 행복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독일의 자연주의자 홈 볼르는 “행복이나 불행은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본질보다 그 사건을 대하는 마음 자세에 따라 좌우된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 일어나는 사건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 있으며 불행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떤 유명한 철학자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책을 썼다. 출판과 동시에 이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정신과 치료를 담당한 의사들은 환자에게 이 책을 읽도록 권했다. 어느 날 매우 초췌해 보이는 한 사람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왔다. 상담한 의사는 중증 정신질환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처방약과 함께 이 책을 권했다. 그런데 환자는 한참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 책은 제가 쓴 것입니다.” 이처럼 행복은 무엇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행복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실천했을 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축복임이 확실하다.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모두 귀에 익숙한 크리스마스 캐롤이다. 아울러 크리스마스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이 산타클로스다. 그는 서기 270년에 출생해서 후에 미라의 대주교를 역임한 바 있는 니콜라스(270-350)라는 실재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라틴어로 상투스 니콜라우스라고 불렸고 이를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 니콜라스라고 했는데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사람들은 산타 클로스라 불렀다고 한다. 원래 니콜라스는 남달리 베푸는 마음이 많았다고 한다. 어느 해 12월 23일 밤거리를 걷고 있다가 구슬픈 울음소리를 듣고 창틈으로 들여다보니 며칠을 굶은 듯한 여인이 세 딸과 함께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이 불쌍해서 금화 몇 닢을 몰래 넣어주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금화를 몰래 넣어주곤 했는데 마침내 그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니콜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감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일을 할 때 나는 가장 행복함을 느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그 후 그는 매년 12월 24일을 정하여 그 날에는 커다란 자루에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듯한 물건을 잔뜩 넣고 거리를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었는데 이것이 곧 산타클로스의 기원이라고 한다.
산타클로스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것을 타인과 나눌 때 많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물건만이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아껴주는 마음, 사랑해주는 것, 고통스러워 할 때 위로해 주는 것 등,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정이나 동기보다는 결과에 더 많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좋은 동기나 열심히 애쓴 과정과는 달리 쓰디쓴 실패라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를 더 많이 보기도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실패해서 얻은 좌절감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의 외면과 질타에서 더 많은 불행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수고했다,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야”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 이런 시가 있다. “저 산 너머 행복이 있다기에 님과 함께 찾으러 갔다가 눈물만 글썽이며 돌아왔다네.” 행복이란 어느 날 “당첨된 것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복권처럼 갑자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앤드루 카네기는 행복이란 외부의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참 행복이란 소유가 아니라 마음에 있음을 깨닫고, 마음을 나누는 삶을 통해서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질도 마찬가지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작은 나눔이 살아갈 수 있는 큰 힘으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사실 뭐든 풍요롭다 보면 남한테 많이 줄 수는 있지. 하지만 많이 나눠주다 보면 생기는 게 또 풍요로움이다. 이것은 단순히 돈 얘기가 아니다. 네가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에서나 느낄 수 있는 일이야. – 짐 스토벌의《최고의 유산 상속받기》 중에서
작은 것이어도 정성스러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나누어 줄 때 받는 이보다 주는 이의 기쁨이 더 넉넉하지 않을까? 김치를 담그다가 겉절이 한 대접을 만들어 혼자 지내는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마음, 이런저런 일들로 신세를 진 이웃에게 전하는 과일 한 봉지, 고맙다고 수줍게 말하며 슬며시 잡아주는 손… 이렇듯 큰 것이 아니어도 비싼 것이 아니어도 잔잔히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뿌듯한 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자신과 타인 모두 가슴 벅차 오르는 감동을 느끼고 산다면 이것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알고 보면 너무도 단순한 진리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산 밑을 관통해서 만든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반드시 밝고 환하게 펼쳐진 들판이 나타난다. 계속되는 코로나도 반드시 끝이 있을 것이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날이 곧 있을 것이다. 이번 연말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전도서 11장 1절에는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라는 성경 말씀과 누가복음 6장 33절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라는 말씀대로 더욱 나누고 베풀어 서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2021 연말이 되면 좋겠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월간 세탁인 독자님을 참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