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년 전 로마에도 세탁업이 있었다. 당시 세탁업자나 세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풀러 (Fuller)라고 불렀다. 로마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튜닉(Tunic)이라는 평상복을 입었다. 남자는 무릎길이였고 여자들은 발목을 감추는 긴 튜닉을 입었다. 그리고 상류사회 사람들은 튜닉 위에 정장으로 몸을 휘감는 토가(Toga)라는 겉옷을 입었는데 그 크기가 매우 커서 보통 넓이가 6피트에 길이가 12피트였으니 요즘 크기로 치면 길이가 아주 긴 Drapery인 셈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품이나 미술품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예외 없이 몸을 휘감는 토가를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튜닉이나 토가의 재질은 리넨이 주를 이루었으나 간혹 상류층에선 울로 만든 튜닉을 입기도 했었다. 색은 흰색이 대부분이었으나 상류층은 은은한 Ivory 색을 선호했고 종종 붉거나 자주색 계통의 염색을 한 튜닉을 즐겨 입었다. 권세가들이 입는 흰 토가의 가장자리에는 금실로 화려하게 장식된 자주색 단을 둘렀는데 그것은 그들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당시 로마의 세탁소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비즈니스였다. 매일 처리해야 할 물량 또한 어마어마했다. 2000 년 전 로마시의 면적은 오늘날 맨하탄의 6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그곳에 거주하는 인구는 대략 100만 명이었으니 인구 밀도로 따지자면 160만 명이 사는 오늘날 맨하탄의 4배가 넘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비좁고 열악한 4, 5층 아파트에서 많은 식구가 복닥대며 살고 있었다. 허술한 건물 안에 배관 (Plumbing)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었던 당시 아파트엔 상 하수도 시설이 없었다. 사람들은 매일 쓸 물을 아래에서 떠날라 올리고 구정물 또한 아래로 갖고 내려가서 버려야 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튜닉이나 토가와 같은 부피가 큰 옷을 아파트에서 빨래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로마 시민들은 Fuller에게 세탁을 맡기는 편리한 방법을 선택했다. 로마 시민들이 벗어대는 세탁량은 어마어마했다. 물론 작은 규모의 세탁소들도 있었지만, 규모가 큰 세탁소는 오늘날 산업 시설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규모였고, 그에 따르는 이권 또한 대단한 것이어서 대개는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밀착 관계를 유지하면서 운영을 했다. 그러니 오늘날 제아무리 큰 세탁소라고 자랑을 해도 당시 로마의 세탁소에 비하면 ‘째비’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줌으로 세탁
당시 세탁소에 들어오는 옷들이 얼마나 더러웠을 것이라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나 주거 환경이 더러웠을 시절에, 더욱이 위생관념이 희박했던 때에 시민들이 벗어놓는 옷들의 상태는 오죽했겠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빨래를 했을까? 오늘처럼 우수한 세제도, 표백제도 없었던 시절에 튜닉과 토가를 무엇으로 희게 빨았을까? 의문의 답은 사람의 오줌이었다. 오줌에는 표백작용을 하는 암모니아 성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탁업자들은 사람으로 붐비는 로마의 거리 곳곳에 커다란 오줌 항아리를 비치해 놓았다. 오줌 항아리를 비치하는 조건으로 정부에 일정 세금을 냈다. 길 가던 행인들은 (물론 남자들만…) 항아리에 오줌을 누어댔고 엄청난 거리의 인파로 그 항아리는 하루가 지나지 않아 가득 차곤 했다. 그렇게 수집된 오줌은 세탁소로 옮겨져 며칠을 묵힌다. 오래된 오줌일수록 암모니아 성분이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큰 규모의 세탁소는 대부분 시가지를 벗어나 냇물이 흐르는 곳이거나 타이버 강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물을 충분히 쓰고 많은 빨래를 널기에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빨래 과정에서 역겹게 나는 오줌 냄새 때문에 도시 외곽이 적격이었다. 각지에서 걷어진 세탁물을 커다란 통에 물과 오줌을 희석한 용액에 담가놓고 장정들이 그 통에 들어가 발로 밟아댄다. 발로 밟고, 손으로 뒤집고, 비비고, 또 밟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옷을 희게 하고 조직에 박혀있는 이물질을 빼내는 작업을 한다. 상류층의 고급 옷은 더러운 서민들의 옷과 함께 빨지 않고 별도로 작업하면서 비싼 값을 받아냈다. 이렇게 직접 세탁을 하는 이들은 독한 암모니아로 인해 손발의 피부가 벗겨지고 갈라져서 피가 나기 일쑤였다. 그들은 대부분 노예이거나 신분이 낮은 계층들이었다. 빨래가 끝나면 깨끗한 물에 여러 번 린스를 반복해서 빨랫줄에 널어 말리는 것이다. 빨래가 말라가는 과정에 솔로 천을 쓸어내리면서 잔주름을 펴준다. 그렇게 건조된 빨래는 다시 반원형 새장처럼 만든 틀 위에 널어놓고 그 틀 안에 유황을 피워 연기를 씌우면서 표백작업을 계속한다. 특별히 희게 만들 필요가 있다거나 지워지지 않는 스테인이 있다면 고운 백토를 천 위에 문질러 희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세탁한 옷들은 꼬리표 (Tag)대로 각 집에 배달되면서 모든 작업은 끝난다. 물론 당시에도 오늘날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클레임이 있었다. 당시 Fuller 들은 우리의 세탁협회처럼 협회를 조직하고 그들의 권익을 보호했다. 그들은 나름대로 클레임에 대한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면, 옷이 바뀌었거나 분실되었다면 Fuller가 책임진다, 아무리 새 옷이라 할지라도 일단 한 번이라도 빨았다면 가치는 반감된다는 등등… 그때 그들의 세탁협회는 조직적으로 잘 돌아갔던 것 같다.
문제는, 아무리 빨래를 잘 해도 오줌의 지린내는 여전히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로마 사람들은 그 냄새를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도 세탁해온 옷에서 퀴퀴한 솔벤트 냄새가 나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웨트클리닝과 냄새.
오늘날 세탁을 마친 옷에서 냄새가 나는 것을 그저 그러려니 한다면 그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우리는 로마 시대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탁의 주목적은 다림질보다는 옷을 깨끗하게 빠는 것에 있다. 웨트클리닝의 묘미는 바로 깨끗하고 냄새 없는 세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웨트클리닝을 했는데도 옷에서 냄새가 난다는 하소연을 들을 때가 있다. 필자는 그런 푸념을 들을 때마다 린스를 어떻게 했는지 되묻는다. 케미컬을 정석대로 썼는데도 퀴퀴한 냄새가 난다면 십 중 팔 구는 린스를 잘 못 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웨트클린을 할 때 최소한 물을 3번 넣어주기를 권장해왔다. 첫 번째 물에는 비누를 넣어 빨래를 하고, 두 번째 물엔 맹물로 린스를 하고, 세 번째 물엔 컨디셔너와 함께 린스를 하는 방법이다.
많은 분이 린스를 한 번으로 끝내거나, 심지어 아예 린스도 없이 드라이클리닝처럼 비누와 컨디셔너를 함께 넣어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을 보아왔다. 또한, 물을 세 번 갈아 넣었다 하더라도 충분한 물을 넣지 않고 린스를 했다면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방법으론 깨끗한 빨래는 물론 냄새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여름철 땀이 나는 계절엔 충분한 린스를 하지 않은 옷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기 일쑤다. 반드시 충분한 린스를 하도록 권고한다.
사람의 코는 같은 냄새를 오래 맡다 보면 감각이 무뎌진다. 오래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강남의 한 오피스 빌딩으로 들어섰다. 그때 나의 첫인상은 빌딩 구석구석에 김치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그런 냄새가 정상인지 물어보았는데, 그 친구는 전혀 냄새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코가 무뎌진 것이다.
웨트클리닝 고객들이 솔벤트 세탁소로 옮기지 않는 이유는 그동안 순화되었던 코가 다시 로마 시대로 돌아가기 싫은 것이다.
김양수
필자는 아쿠아매스터 웨트클리닝 케미컬 개발자이며, 100% 웨트클리닝 스토어인 그린 라이프 클리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201) 699-7227 또는 yangkim50@gmail.com로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