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집사람을 포함한 여자 다섯을 내 SUV에 태우고 세 시간이 넘는 오스틴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어쩌다 내가 그런 어색한 화폭 속에서 운전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것은 내 일생에서 가장 요란한 여행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차 안 다섯 부인의 면면을 뜯어보면 제각기 말 좀 해 봤다는 관록을 뽐내는 여자들이다. 그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앉았다면 시너지 효과는 절정에 이르렀고, 그녀들은 한껏 승화된 수다의 최고 경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차 안은 그야말로 식지 않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한순간이라도 대화가 끊어지는 틈을 허락하지 않는 그녀들은 운전하는 나의 존재는 아예 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도, 그렇다고 듣지 않을 재간도 없었던 나는 오가는 여섯 시간 동안 집단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대화의 유형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함에 따라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게다. 첫째, 생각을 정리해놓고 말을 하는 강의형. 둘째, 생각과 말을 동시에 하는 달변형. 셋째, 일단 말을 먼저 쏟고 나서 생각하는 수다형. 넷째, 생각 다 해놓고 말 안 하는 답답형. 차 안 여자들은 내 아내를 위시해서 모두 셋째 유형에 속하는 게 분명하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잦아 다툼이 있기도 하겠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없으므로 뒤끝도 없다. 나는 그녀들의 수다에는 분명 신기가 서려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다섯 여자가 동시에 말을 쏟아내도 다 통할 수 있는단 말인가? 어쩌면 한 여자가 여럿을 상대로 동시에 대화할 수 있는단 말인가? 남자들의 머리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화법이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있잖아, 있잖아, 어빙에서 옷 장사 하는 정민지 알지? 왜, 남편이 무능하다고 매일 티격태격하다가 작년에 이혼한 애 말이야. 얼마 전에 알았는데 새 남자가 생겼다는 거야.”
“아니, 아니, 거긴 비싸. 월마트에 가면 똑같은 걸 다섯 개에 십구 불 구십구 전에 판다니까.”
“상대 남자는 세 살 연하라는데 멀쑥하게 잘 생겼다는 거야. 키도 커, 매너도 좋아, 게다가 유머센스도 풍부하고 해서 민지한테는 복덩이가 굴러온 셈인 거지. 사실 말이지 민지 걔 뭐 볼 거 있어? 그래서 얼마 전부 터 아예 둘이 합쳐 산다지 뭐야.”
“뭐라구? 안젤라가 시집 간다구? 어머나, 잘됐다아. 걔 원랜 지 아빠를 닮아서 얼마나 못 생겼다구. 새우눈에 들창코에다 입은 튀어나왔지, 어디 시집이나 갈 수 있을까, 지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얼마 전 한국에 데려가서 몽땅 뜯어고치고 왔대. 그래도 몸매는 괜찮잖아. 그 후론 남자들이 줄 섰다는거야. 역시 여자팔자 성형문제야 그치?”
“어디까지 했더라? 응, 그런데 민지 걔도 복이 더럽게 없지, 알고 보니 그 인간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만년백수라는 거야. 맞아, 맞아, 제비야 제비. 민지 돈 보고 접근한 거였어.”
“아니이, 월마트라니까, 쌤스가 아니고 월마트, 그래애 월마트.”
“도대체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도 없을까? 그래도 민지 걔는 그 남자가 그렇게 좋대요. 그동안 기회를 못 잡아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이라나 뭐라나.”
“뭐? 안젤라 신랑 될 사람이 의사라구? 성형 덕 단단히 봤네. 결혼 날짜는 잡았대? 언제?”
“세상 사람이 다 아는걸 민지만 모르는 거야. 벌써 적지 않은 돈이 그 남자한테 건너갔대. 어쩌고 저쩌고…”
저 다섯 여자가 쏟아내는 난수표와 같은 대화를 어찌 정리하며 들어야 할꼬? 지난 이십 년 이상을 거의 매주 만나는 그들에겐 수다란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자세히 들어보면 이미 여러 번을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버전으로 각색하는 신묘한 재주가 있어 수다는 늘 재미있는 모양이다. 만약 이십 년 이상 매주 만나온 다섯 남자가 차에 탔다면 어땠을까? 보나 마나 조용한 명상의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잠을 자고 있을 테니까. 한참을 자고 난 후 기지개를 켜며 긴 정적을 깨는 한 마디…
“거, 날씨 한번 죽이네.”
그 소리에 깨어난 옆에 친구가 한 마디…
“그러게.”
아마도 그것이 대화의 전부일 것 같고 그들은 곧 다시 잠을 잘 것이다.
“있잖아, 있잖아, 내 말 좀 들어봐, 내 말 좀 들어봐.” 도무지 지치지 않는 아내가 목소리를 높여 주의를 끌어냈다. 다급하게 말을 반복해서 쏟아내는 걸 봐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오리지날 버전임이 분명했다. “어제 인터넷에서 봤는데, 미국에 어느 노부부가 있는데, 평생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이였데. 단 한 순간이라도 떨어져 본 적이 없이 늘 붙어서 살았대요. 저기, 플래노에서 일식당 하는 조사장 알지? 왜, 콧수염에 골프 잘 치는 사람 말야. 그 부부가 그렇다데. 작년에 시아버지가 위독해서 남편이 한국엘 나갔는데 세상에, 거기 있는 동안 하루에 카톡을 백 오십 통 이상 주고받았대. 우리 남편 같으면 아주 먼 나라 이야기지.”
수다쟁이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이야기를 요약해서 말하는 ‘대강의 줄거리’에 약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길게 말을 하다 보면 꼭 옆길로 샌다는 것이다. 아내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렇게 60년 이상을 사랑해온 그들에게 갑자기 불행이 닥쳤다. 할머니가 그만 치매에 걸린 것이다. 늘 상냥하고 웃음이 많았던 할머니는 말을 못 하고 온종일 소파에 앉아 천장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낙심한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아내 옆에 앉아 손을 꼭 붙들고 엄지손가락으로 세 번 꼭꼭꼭 눌러준단다. 그 뜻은 ‘I love you’인 것이다. 그러면 할머니도 손가락을 꼭꼭 두 번 눌러 ‘Me too’라고 화답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야만 아내의 치매가 악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일 서로 손을 붙들고 사랑을 속삭인단다. 꼭꼭꼭… 꼭꼭. 사랑해… 나두. 꼭꼭꼭… 꼭꼭. 사랑해… 나두…
“말해봐, 당신은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리면 그럴 수 있어?” 뒤에 앉은 아내는 손가락으로 나의 어깨를 건드리며 마치 당장 치매에 걸릴 것처럼 다그쳤다. 와글거리던 차 안은 갑자기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녀들은 비로소 나의 존재를 느꼈던 게다. 그들은 잠시 숨을 죽이고 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거야 물론이지. 하루종일 꼭꼭꼭 진물나게 눌러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치매부터 걸려 보라구.”
“어머 잠깐, 내가 먼저 치매에 걸려야 되는 거야?”
“당연하지. 그래야 얘기가 되는 거 아냐?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부부한텐 그 얘기가 안 통할 것 같아.”
“왜? 나 치매 걸리면 팽개치고 달아날 거지? 그치?”
“그게 아니고, 생각해봐. 만약 당신이 치매에 걸렸다고 치자. 나는 당신 손을 붙들고 꼭꼭꼭 눌러 주겠지, 사랑해 하고 말야.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나오겠어? 분명 꼭꼭 꼬고곡 꼬고댁댁 꼬고꼬고… 요렇게 나오지 않겠어? 사랑이 밥 먹여주냐, 그럴 시간 있으면 나가서 돈이나 벌어와라 뭐, 그런 말이겠지.”
까르르… 쟁반에 콩 쏟아지듯 한바탕 자지러지는 웃음과 함께 그녀들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해독불가한 난수표를 계속 쏟아내고 있었다. 와글와글와글와글…..
수다쟁이 아내를 둔 남편은 피곤하다. 그래도 생각 다 해놓고 말을 안 하는 답답형 아내보다는 조금은 낫지 않을까?
김양수
필자는 아쿠아매스터 웨트클리닝 케미컬 개발자이며, 100% 웨트클리닝 스토어인 그린 라이프 클리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201) 699-7227 또는 yangkim50@gmail.com로 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