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빛은 새 봄맞이 아지랑이!

창가로 스며드는 정갈한 가을 빛 햇살 아래 조용히 두 손을 펼쳐본다. 마디가 조금은 굵어지고, 지나온 세월의 궤적이 잔주름으로 깊게 패인 이 손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세파를 견뎌내며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삶의 터전을 일구어낸 고마운 손이다. 오늘, 문득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시니어라는 인생의 커다란 반환점을 돌고 있는 우리 자신을 깊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돌아보면 참으로 바쁘고 치열한 삶이었다. 때로는 우리의 뜻과 다른 세상의 풍파 속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고, 일터와 삶의 자리를 지켜내느라 정작 우리 자신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스스로를 돌볼 겨를도 없이 내달렸던 그 수많은 밤과 낮들이 스쳐 지나간다.

거울 속에 비친 주름진 얼굴과 희끗희끗해진 머리칼은 결코 세월에 밀려난 흔적이 아니다. 힘겨웠던 하루하루를 도망치지 않고 이겨낸 훈장이자,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일궈낸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타인의 기대와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며 남 몰래 속으로 눈물 흘렸던 수많은 순간들을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견딤과 애씀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여기에 서 있다.

그동안 참으로 잘 살아왔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대단한 성공이나 화려한 훈장이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순간들을 정직하고 진솔하게 채워온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경의를 받아 마땅한 인생의 승리자다. 이제 남의 눈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엄격함은 내려놓는다. 세상의 잣대 대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참 잘해왔다”라고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다해 우리 자신을 따뜻하게 칭찬해 본다.

외적인 성과나 눈에 보이는 소유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저 살아있음 그 자체와 존재의 근원에서 오는 은혜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이 마음이야말로 시니어의 삶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가장 깊은 지혜다. 젊은 날 바랐던 열매가 기대만큼 풍성하지 않았을지라도, 혹은 지금 손에 쥔 것이 작고 소박해 보일지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존재하는 모든 순간이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으며, 우리에게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고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채워갈 고유한 권리가 있다. 비울수록 채워지는 신비로움을 배우는 요즘이다. 마음의 욕심과 욕망을 비워낸 자리에는 잔잔한 평화와 감사가 들어앉는다. 소소한 일상의 기적들을 알아채는 눈이 열리고, 우리와 함께해 온 사람들의 소중함이 더욱 선명해진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계 속에서 마음을 졸이고 상처받으며 살았는가.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까지 얻으려 애쓰고, 모임과 관계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지친 몸을 끌고 나섰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관계 역시 정돈하고 다듬어야 할 때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 우리를 지치게 하거나, 마음의 평정을 흔들고, 존재를 단정 짓는 인연에는 부드럽고 담담하게 거리를 둘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은 결코 타인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건강한 울타리를 세우는 일이다.

대신,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진실한 이들과 깊은 온기를 나누는 데 시간을 쓴다. 긴 설명 없이도 우리의 아픔을 알아주는 오랜 친구, 언제나 우리의 편이 되어주는 가족, 그리고 따뜻한 눈빛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소중한 이들과 소박한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이면 족하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과의 화해’다. 과거의 실수나 아쉬웠던 결정들,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았던 지나간 일들에 대해 스스로를 더 이상 자책하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욱 아름답고 인간적이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우리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니어 시절에 누릴 수 있는 참된 자유이자 평안이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나아갈 시간은 어떻게 채워가야 할까? 지나온 날들이 누군가를 위한 ‘의무의 삶’이었다면, 이제부터 다가올 날들은 온전히 우리를 위한 ‘선물의 삶’이어야 한다. 두 번째 인생 여정은 거창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레이스가 아니라, 매 순간을 깊이 느끼고 누리는 산책과 같다.

첫째, 우리만의 소소한 기쁨을 매일 만들어가는 삶이다.

창가에 놓인 초록 식물에 물을 줄 때 잎사귀에서 느껴지는 싱그러움, 아침 햇살을 맞으며 정갈한 산책길을 걷는 순간, 마음을 온화하게 해주는 음악 한 자락, 손수 끓여낸 따뜻한 차 한 잔에서 올라오는 김을 바라보는 평화로움까지.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드는 소소한 취향과 즐거움을 매일의 일상 속에 하나씩 심어두어야 한다.

둘째, 배움과 창조의 즐거움을 놓지 않는 삶이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새로운 것을 향한 호기심과 열정까지 늙을 필요는 없다. 그동안 사느라 바빠서 미뤄두었던 그림 그리기, 글 쓰기, 손끝으로 만들어내는 공예나 정원 가꾸기, 혹은 정갈한 요리를 배우는 것까지 무엇이든 좋다. 결과물이나 타인의 평가에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과정 자체가 주는 순수한 몰입과 즐거움을 누리는 배움의 여정을 계속해 나간다.

셋째, 몸과 마음을 아끼고 돌보는 삶이다.

우리의 몸은 지금까지 우리를 태우고 인생이라는 먼 길을 달려온 고마운 마차와 같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 기울이고, 제철의 건강한 음식을 대접하며, 무리하지 않는 정직한 운동으로 몸을 보살핀다. 마음에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생각을 심어주어, 안으로부터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단아한 어른으로 살아가야 한다.

넷째, 매일을 축제처럼, 참 좋은 우리의 인생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면 시니어 이후의 삶은 오색 단풍이 찬란하게 물들고 풍요로운 결실이 마음을 그득히 채우는 가을의 한복판이다. 결코 시들어 저물어가는 스산한 계절이 아니라, 삶의 정수가 가장 깊고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인생 최고의 성숙기다. 봄의 조바심도, 여름의 치열함도 지나간 자리에 비로소 찾아온 고요하고 풍성한 축제의 시간이다.

어제에 대한 후회와 미련으로 오늘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지금 이 순간의 평화와 기쁨을 놓치지 않는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선물 같은 하루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성껏 아끼며 살아간다.

시니어라는 나이는 단단했던 삶의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진짜 우리의 삶을 마주하는 축복의 시기다. 빽빽하고 어두운 숲을 지나 비로소 탁 트인 언덕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숨을 깊이 쉬는 것과 같다. 이제는 무언가를 더 채우고, 높이 오르며, 남들과 경쟁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내몰지 않아도 된다.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의무와 책임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을수록, 영혼은 더욱 가벼워지고 일상의 풍경은 정갈하게 다가온다.

가슴 깊은 곳, 나의 영혼을 향해 나지막이 이야기해 보자. “소중한 나야! 지금까지 참으로 애썼고 정말 수고 많이 했다. 그리고 고맙다.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매일매일이 더없이 자유롭고, 더없이 온화하며, 소소한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하기를 마음 다해 응원한다. 나의 남은 삶은 지금까지 지나온 그 어떤 날들보다 가장 아름답고, 깊고, 참 좋은 계절이 될 것이다. 가을 빛은 스러져가는 황혼이 아니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아지랑이인 것을 명심하자!”

어느새 추수 감사절이다. 되돌아보면 어려운 때도 많았지만 그 때 그때의 모든 삶에서 감사의 제목들이 풍성함을 깨닫는다. 민수기 6장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시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 말씀을 상고하면서 감사와 기쁨이 풍성한 추수 감사절 되기를 소망한다.

월간세탁인 독자님들을 참~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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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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