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사람들은 꽃을 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고혹한 향기를 품고 있는 장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담장을 가득 메운 덩굴장미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어쩌면 그렇게 예쁜 장미 꽃담을 만들었을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덩굴장미는 척박한 곳에서 잘 자란다. 오히려 기름진 땅에 심어 물을 많이 주면 썩어 버린다. 덩굴장미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을 잘 보면, 해가 잘 들지 않는 담장 안쪽이다. 그곳은 햇빛이 부족해 다른 식물들도 잘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덩굴장미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담 너머에 비치는 햇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담장을 타고 올라간다. 그렇게 수십 날을 애쓴 후, 수백 송이의 덩굴장미 봉오리들은 담장 위에서 행진한다. 그리고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잔가지들을 쳐 내주기라도 하면, 그 아픔만큼이나 더욱 아름답고 탐스러운 꽃망울을 활짝 터뜨려준다.

병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손자는 구지(九地), 즉 아홉 개의 싸움터에 관해 서술했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제후가 자기 땅에서 싸우는 산지(散地)다. 말할 것도 없이 이길 승산이 많지만 방관하다가 먹히는 수가 있다. 또 한가지는 범지(犯地)다. 이곳은 숲이 깊고 습지가 많아 싸우기가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전략만 잘 세우면 이길 수도 있다. 그리고 사지(死地)가 있다. 사지는 말 그대로 선택의 여지 없이 죽을 것을 각오하고 싸워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승리할 승산이 더 높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었는데 앞뒤 잴 여력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전진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승리하는 것이다.

덩굴장미가 척박한 환경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공한 사람들의 배경을 잘 알고 보면 역경과 고난이 많았던 것에 주목하게 된다. 유명한 성악가인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를 듣다 보면 영혼의 울림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는 어렸을 때 실명을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에 화를 내면 그의 어머니는 잔잔한 오페라 곡을 들려주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듣는 것,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노래는 안드레아 보첼리의 꿈이 되었다. 세계 정상의 테너 가수로 우뚝 선 그는 더 자신의 과거가 아픔과 좌절의 시간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노래에 심금을 울리는 감정을 깊이 실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지(死地) 같은 실명의 좌절을 딛고서 세계적 테너 가수가 된 안드레아 보첼리와. 척박한 땅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덩굴장미는 서로 닮은꼴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도 치열한 전쟁터다. 어린 시절엔 시험 경쟁에서 이겨야 했고, 청년이 되어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직장을 구해야 했다. 좀 더 어른이 되어선 결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 없던 이민 생활은 더욱 그랬다. 어쩌면 그 시절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사지(死地)였다. 뒤돌아보면 정말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다. 눈 깜짝할 새 세월은 많이도 지나 어느새 한두 명씩 손자를 품에 안아보는 때가 온다. 마치 이제 다 이룬 것 같은 안도감이 드는 순간 가슴 한구석에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떠돈다. 그것은 현재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애써야 할 사지 같은 전쟁터를 잃은 까닭이다. 당연히 자부심, 보람, 성취감도 가질 수 없다. 적당히 여유로워져,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이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진다. 혹자는 마음을 비웠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소중한 삶의 질을 높여줄 자신의 꿈이나 목표에 대한 모든 비젼을 포기한 것이기도 하다. 때론 텅 빈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공허함에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방황하던 어린 시절의 사춘기와 비슷한 개념의 ‘사추기’가 다시 시작되어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인생은 역시 허무한 것’이라고 씁쓸하게 일축하면서 게을러진 자신을 합리화시켜 버린다.

어쩌면 우리도 지금 척박한 곳에 자리한 덩굴장미일 것이다. 기운은 예전 같지 않아 하룻밤 잠을 설치면 이틀이 고단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관절 마디는 여기저기서 쑤시고 아프다고 아우성이고… 종종 참담함이 느껴지기도 할 만큼 척박(?)한 시기에 들어섰다. 그러나 만약 이민 초기 때와 같은 사지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것들이 과연 제약될 수 있을까? 멈추면 죽을 수도 있는데 이런저런 핑계들을 댈 수 있을까? 인간 수명이 이제 백세시대다. 부고를 봐도 70대라면 너무 이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예전 50대가 지금 70대라고 한다. 요즘 50대와 70대 사이는 구별이 안 될 만큼 젊음을 유지한 사람들도 많다. 만약 그러고 보면 앞으로 남아 있을 30-50년 세월을 적당히 살기엔 인생이 허무하고 너무 길다.

잊고 살았던 우리의 꿈들을 주섬주섬 다시 모아보자. 그리고 예전 같은 긴장감과 열심으로 일궈가자. 그 꿈은 남을 위한 봉사가 될 수도 있고, 그림이나, 음악, 글쓰기 등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 싶었던 일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서 시작해 볼 수도 있다. 60대 초의 한 독자님은 시집을 발간했다. 삶의 희로애락이 푸근히 담긴 그분의 시를 읽으면 가슴의 온도가 따뜻하게 올라간다. 70대 중반의 한 어르신은 일주일에 한 번씩 노인분들이 계시는 요양원에서 찬양 사역을 하신다. 천국 소망을 갖게 해주는 그분의 힘 있는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분들이 많아졌다. 이분들 모두 자신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꿈을 심어주는 아름다운 일을 하고 계신 것이다.

 

가슴에 기쁨을 가득 담아라.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라. 남이 잘되도록 도와줘라. 남이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기도하라. 기도는 소망성취의 열쇠다. 준비하고 살아가라. 준비한 자가 거두게 마련이다.

남을 기쁘게 하라. 끊임없이 베풀어라. 샘물은 퍼낼수록 맑아지게 마련이다. 불평을 하지 말라. 불평은 자기를 파괴하는 자살폭탄이다

어디서나 당당 하라. 밝고 힘찬 찬송가를 불러라. 그것이 성공 행진곡이다. 푸른 꿈을 잃지 말라. 푸른 꿈은 행복의 청사진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겨난다. 좋은 말만 사용하라. 좋은 말은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부메랑이다.

희망의 꽃을 피워라. 희망의 꽃만이 희망의 열매를 맺는다. 이 모든 길이 성경 말씀에 있다. 성경을 눈과 마음에 가득 채워라. – 퍼온 글 

더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그다지 젊지 않다는 핑계로 자꾸만 나태해지는 것을 경계하자. 앞으로 살아온 만큼 더 살게 될 수도 있는 시간을 무미건조하게 보내는 것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내일 떠나게 될지 아니면 앞으로 몇십 년을 더 남아 있게 될지 되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더욱 소중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그 결심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호수아 1:8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아멘+” 성경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 동안 평탄하고 형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순종하는 5월이 되면 좋겠다.?

월간 세탁인 독자 여러분을 참~~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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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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