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했던 말

1959년생, 1남 2녀의 엄마, 금융 전문 투자가, 작가, 나이 63세, 현재 말기 암 투병 중, 3개월 생존 가능 예상. 우리 집 건너편에 사는 이웃 친구의 이력서다. 이름은 르나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7년 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왔을 때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영어 발음에 악센트가 들어 있는 독일인 이민자였다. 역사 시간에 배운 독일인에 대한 강한 이미지와는 달리 르나다는 다소곳하고 따스한 미소가 잔잔한 한국 엄마 같은 인상이었다. 그렇게 이웃사촌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7살이던 우리 큰 딸애가 그녀의 집에 처음 놀러 갔다. 르나다도 딸이 둘, 그리고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아이들과 놀다가 집에 들어온 큰딸이 시무룩했다. 그 집 막내인 여자아기가 있는데 눈이 아파 덮어 놓아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안아 주니까 잘 웃더라고 말하는 딸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다음 날, 우리 딸이 아기를 봐주러 간다고 했다. 눈이 아프다고 하니 안부도 물을 겸 딸과 함께 그녀의 집에 갔다. 알고 보니 르나다의 막내딸은 그냥 눈이 아픈 것이 아니었다. 선천적 안구 장애였다. 겨우 명암 정도를 구별할 수 있는데 안구가 발달하지 않은 유아기에 빛이 많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계속 안대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르나다는 아기가 눈은 아프지만, 몸은 건강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그녀가 투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책도 몇 권 저술한 심리학 박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르나다는 자신은 어려서부터 똑똑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얼마 전까지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내가 비정상으로 태어나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평생 눈먼 채 살아가야 할 아기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자기가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동네 산책길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와 마주치는 르나다를 종종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길에서 만난 르나다가 슬픈 얼굴로 자기 집에 와 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남편이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기는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 키우고, 정말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괴로운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며 엉엉 울었다.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그냥 안아 주고 남편은 돌아올 거라고 말하며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앞 못 보는 아이를 키우는 르나다의 쓰린 가슴을 찢어지도록 아프게 만든 그녀의 남편이 너무 미웠다. 그런데도 르나다는 씩씩했다. 그녀의 세 아이는 잘 자랐다. 큰아들은 테니스를 잘해 주 대표 선수가 되어 특기 장학생으로 좋은 대학을 갔다. 큰딸은 자기 엄마처럼 투자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눈이 아픈 막내는 안구 수술을 받아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발레를 전공하고 있다. 그녀의 세 아이가 이렇게 자리를 잡는 데까지 17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리고 두 달 전 언제나처럼 동네 산책길에서 르나다를 만났다. 그녀는 이제 아이들도 모두 떠나고 자기 혼자서 단독 주택에 살기가 외로워서 콘도로 이사할 계획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직도 집값이 너무 내려가 있으니 내년엔 자기가 이사 할 수 있게 집값이 많이 오르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리고 3주 후, 르나다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저녁에 전화했다. 그녀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지난주 계속 어지러워서 병원에 가서 검사했더니 혈액암 말기 판정이 나왔다는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그녀는 너무 멀쩡했었다. 우린 함께 집값이 빨리 오르면 좋겠다고 했었고, 이사를 가면 이 동네 산책길을 그리워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게 바로 3주 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르나다를 만나러 갔다. 그녀의 현관에는 ‘No Tears Allowed’(눈물 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는데 가슴에 눈물이 차올랐다. 현관에 쓰여 있는 그 문구를 보며 눈물을 꿀꺽 삼켰다. 르나다가 문을 열었다. 그녀의 몸은 이미 야위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줄 몰라 그녀를 꼭 안았다. 그녀의 몸은 작은 새처럼 가냘팠다. 그녀가 말 문을 열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이제 내 나이 겨우 63세에요. 항상 운동했고, 영양 있는 음식을 섭취했지요. 지난봄에 건강 검진도 정상으로 나왔어요.” 잠시 숨을 고른 르나다의 얘기가 계속되었다. “처음엔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울고 또 울었지요. 화가 나서 접시도 집어 던졌어요. 이불 시트도 빡빡 찢었지요. 아이들은 어떡하냐고, 벌써 세상을 떠날 만큼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원망과 절규로 며칠을 울부짖었어요.”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 시절엔 사람들의 칭찬을 독차지했고, 어른이 되어선 심리학 박사가 되어 책을 내고, 투자 회사를 해서 돈도 많이 벌었어요. 부족한 것 없이 살았죠. 아이들도 이젠 어른이 되어 더는 돌보지 않아도 돼요. 늘 걱정이던 막내도 혼자 운전할 수 있을 정도로 앞을 볼 수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내 가슴엔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쳐났어요. 뒤돌아본 내 인생은 정말 행복했어요.” 그녀는 정말 기쁜 듯 환한 미소로 얘기를 계속했다. “내가 이 동네 오솔길을 산책할 때, 저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오는지 너무 잘 알지요. 그런데 인생은 그렇지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살면서 맞이하는 매 순간을 우리가 마치 너무 잘 아는 듯이 살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시간이 축복인 것이죠.” 그녀에게서 3개월이 될지도 모르는 시한부 인생의 불안감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르나다는 계속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어요. 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너무나도 평안해졌어요. 사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또 떠나가는 것도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천국이 있음도 확신합니다. 이런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혼자서 해보려고 아등바등하면서 괴로워하지 않고 모든 일상을 축복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일이라도 내 의지대로 하느냐, 하나님께 맡기느냐에 따라 과정과 결과가 달라지지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감사할 뿐이죠. 그리고 난 이제 기적도 믿어요. 인간의 한계로 할 수 없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기적이라고 하지요. 가장 큰 기적은 내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게 된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연장해 주시기를 원하지만, 그러지 않고 데려가시더라도 지금까지의 내 모든 삶에 내려주신 축복에 감사할 것에요.” 그녀의 얼굴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평안함과 기쁨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기적이었다. 정말 그녀가 회복되는 기적이 꼭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르나다의 집을 나섰다.

꽤 오래전에 50이 넘으면 나머지 인생은 덤으로 사는 거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때는 이해가 안 되었다. 100 세 수명을 운운하는 시절에 50 이후가 덤이라는 말은 앞뒤가 전혀 안 맞는 얘기 같았다. 그런데 60살이 넘어보니까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지인 중에 60대 이전에 세상을 떠나거나 심각하게 아픈 분이 꽤 여러분이 있다. 그들이 열심히 살아온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하는 얘기도 거의 비슷했다. ‘내일 일은 알 수 없더라, 오늘이 축복이더라, 그러니 오늘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하게 살아라.’ 르나다의 삶도 비슷했다. 그리고 그녀가 지금 하는 말도 같았다.

우리는 시간의 귀중함과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사는 때가 많다. 사람이 70년을 산다고 할 때, 잠자는 데 20년, 일하는데 20년, 먹는 데 6년, 노는데 8년, 샤워하고 단장하는데 5년, 전화 거는 데 1년, 출퇴근하는 차 속에서 7년, 골똘하게 생각하는 데 3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시간 동안 행복을 느낄만한 순간이 별로 없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애써 만들어야만 한다. 행복은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포함한 타인을 사랑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수록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미련한 생각에 욕심만 부리며 살기엔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상당한 시간을 허비할 시간이 없음을 꼭 기억해야 한다.

어느새 한여름이다. 언덕 위 나무엔 아직 새 파란 어린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들은 앞으로 맞이할 뙤약볕과 거센 소나기를 견디며 어느 가을날 풍성한 열매로 태어날 것을 기대할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인생이란 4계절과 너무도 많이 닮았다. 이제 한여름의 길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열매란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깊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더라도 축복으로 받아들이면 더욱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고단함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시간이 더할 수 없는 축복임을 감사해야 한다. 에베소서 5장 16절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는 성경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6월이 되면 좋겠다.

월간 세탁인 독자님들을 참 ~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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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