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역사의 하트포드 클리너스: 제리 와노우 씨 “드라이클리닝은 결국 사람을 위한 사업”

[washingtoncountyinsider.com – 2026.06.21] 위스콘신주 하트포드(Hartford)를 대표하는 세탁업체 중 하나인 하트포드 클리너스(Hartford Cleaners)가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1930년 창업 이후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하트포드 클리너스가 창립 100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 57년 동안 회사를 이끌어 온 제리 와노우(Jerry Wannow)가 은퇴하며 경영권을 새로운 주인에게 넘겼다.

올해 86세인 와노우는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하트포드 지역 세탁업 역사에서도 중요한 한 장을 마무리하게 됐다.

기차로 세탁물을 보내던 시절

하트포드 클리너스의 역사는 19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랭크 오토(Frank Otto)와 엘라 오토(Ella Otto) 부부가 루비콘 강변 밀스트림 빌딩(Millstream Building)에 세탁소를 열면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하트포드에 드라이클리닝 설비가 없어 고객의 의류를 기차에 실어 밀워키로 보낸 뒤 세탁을 마치고 다시 가져와 프레싱 작업을 거쳐 고객에게 전달했다.

1940년대 중반 들어 첫 드라이클리닝 기계를 도입하면서 비로소 지역 내에서 직접 세탁이 가능해졌다. 이후 1957년 프랭크 오토 주니어가 새로운 매장을 건립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그리고 1989년, 제리 와노우와 아내 캐롤(Carol)이 현재의 107 W. Sumner Street 건물을 신축하면서 오늘날의 하트포드 클리너스가 완성됐다.

와노우는 “지금의 건물은 내가 직접 지었다”며 “그 시절과 지금은 모든 것이 달랐다”고 회상했다.

열 살부터 시작된 세탁 인생

와노우의 세탁업 경력은 하트포드에 오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나는 열 살 때부터 세탁업에 종사했다.”

시카고에서 성장한 그는 쉐라톤 파크 호텔(Sheraton-Park Hotel)에서 세탁물을 수거하는 일을 맡으며 업계에 첫발을 들였다. 이 기회는 무려 70년 동안 세탁업에 종사했던 그의 아버지를 통해 얻은 것이었다.

이후 가족은 미네소타로 이주했고, 와노우는 워터타운과 코케이토 지역에서 세탁업을 운영했다. 그리고 더 큰 시장을 찾아 28세에 하트포드로 옮겨왔다.

그가 처음 업계에 발을 들였을 당시와 현재의 드라이클리닝 산업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오늘날 사용하는 화학약품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지금의 환경 규제 역시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한때 모든 드라이클리닝 장비가 미국에서 생산되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의 장비가 해외에서 제조된다.

그동안 그는 원단, 세탁 기술, 고객 요구사항, 환경 규제 등 업계 전반의 수많은 변화를 직접 경험했다.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가치

수많은 기술 변화 속에서도 와노우가 지켜온 것은 ‘사람’이었다.

그는 일반 드라이클리닝뿐 아니라 웨딩드레스와 같은 고가 의류 관리 전문가로도 지역사회에서 명성을 얻었다.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도 도전했다.

카펫 세탁 사업을 운영했고 맞춤 커튼 사업도 병행했다. 한때 시외버스가 다운타운에 정차하던 시절에는 그레이하운드(Greyhound) 버스 승차권 판매까지 맡았다.

“그때는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해야 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하트포드 클리너스는 수많은 경쟁업체들이 문을 닫는 동안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70년대 경기 침체와 코로나19 팬데믹은 업계에 큰 타격을 안겼다. 특히 재택근무 확산으로 정장과 드레스 셔츠 세탁 수요가 급감하면서 많은 드라이클리너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와노우는 그 모든 시간을 함께 견뎌낸 사람으로 아내 캐롤을 가장 먼저 꼽았다.

“우리는 60년 동안 함께 살았다. 정말 행운이었다.”

부부가 함께 만든 성공 스토리

제리와 캐롤은 1959년 3월 29일 부활절 댄스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와노우는 60년이 넘은 지금도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함께 사업을 키우는 동시에 세 자녀를 키웠으며, 수십 년 동안 지역 주민들을 고객으로 맞이했다.

캐롤은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라 진정한 사업 파트너였다.

그녀는 하트포드 클리너스에서 함께 일하는 한편 세인트 킬리언 학교(St. Kilian School) 교사로 재직했고, 라이온스클럽 활동과 지역사회 봉사에도 적극 참여했다.

5년 전 캐롤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것은 와노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

그 후에도 그는 주당 70시간 가까이 일하며 세탁소를 운영했다.

그러자 자녀들이 먼저 은퇴를 권했다.

“아이들이 이제는 회사를 팔 때가 된 것 같다고 하더군요.”

고객과 함께 성장한 96년

와노우 부부는 지역사회 봉사에도 헌신했다.

제리는 약 50년 동안 하트포드 라이온스클럽 회원으로 활동해 왔다.

부부는 지역 크리스마스 위원회와 함께 저소득 가정을 위해 기증된 겨울 코트를 무료로 세탁해 주었고, 각종 지역 행사와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는 “한때는 마을 사람 거의 모두를 알고 지냈다”고 말했다.

고속도로가 왕복 2차선이던 시절, 주유소가 다운타운 거리를 가득 메우던 시절, 고객들이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곧바로 매장으로 들어오던 시절을 그는 아직도 기억한다.

1989년 현재 건물로 이전하던 날도 잊지 못한다.

“이사할 때 고객 25~30명이 직접 옷을 들고 길 건너편 새 건물로 옮겨줬다.”

이 일화는 하트포드 클리너스가 지역사회와 얼마나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200년 넘게 이어진 세탁업의 유산

하트포드 클리너스가 창립 100주년을 향해 가는 지금, 그 숫자만 봐도 놀랍다.

창업주 프랭크 오토는 약 70년 동안 업계에 몸담았고, 와노우의 아버지 역시 70년 동안 세탁업에 종사했다. 여기에 와노우 자신의 약 70년 경력을 더하면 세대를 거쳐 축적된 경험은 200년을 훌쩍 넘는다.

그러나 그의 유산은 단순히 숫자로만 설명할 수 없다.

정성스럽게 보존된 웨딩드레스, 이름을 불러주며 맞이했던 고객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세탁한 겨울 코트, 지역사회 봉사활동, 그리고 변화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끈기가 바로 그의 진정한 유산이다.

2026년 2월 8일, 와노우는 57년 동안 운영해 온 하트포드 클리너스의 열쇠를 새로운 오너인 토리 크루징(Tori Krusing)에게 공식적으로 넘겼다.

이날 토리의 가족들은 샴페인 건배와 함께 역사적인 순간을 축하했다.

비록 은퇴를 선언했지만 와노우는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실 은퇴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하트포드 클리너스는 창립 100주년을 향해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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