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위선자

그의 이름은 조지 헬(Hell) 이다. 그의 이름 ‘헬(지옥)’이 암시하듯, 그는 야비하고 난폭하기 짝이 없어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마을의 모든 이들이 마주치기를 꺼리는 인물이었다. 어둠 속에 살던 그에게 어느 날 기적처럼 빛이 찾아온다.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여인 제니를 만나 첫눈에 깊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조지는 그녀에게 다가가 평생을 함께해 달라고 청혼하지만, 제니는 그가 악명 높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한다. “저의 꿈은 성자의 얼굴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당신은 그런 모습이 아니군요.” 거절의 아픔 속에서도 제니를 향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조지는, 결국 가면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든다는 장인을 찾아간다. 그리고 간절히 애원한다. “제가 사랑하는 여인은 성자의 얼굴을 가진 사람을 원합니다. 제발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온화해 보이는 성자의 가면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의 진심 어린 사랑에 감동한 장인은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성자의 가면을 만들어 준다. 가면을 쓰고 다시 나타난 조지에게 제니는 기꺼이 마음을 열었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그때부터 조지의 치열한 노력이 시작된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본래 야비한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는 매 순간 진짜 성자처럼 행동했다. 언제나 따뜻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고, 사려 깊은 말씨로 아내를 대했다. 사랑은 그를 더는 과거의 못된 사내로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방탕했던 시절을 함께했던 옛 연인이 그를 찾아온다. 조지의 배신에 앙심을 품고 있던 그녀는 제니가 보는 앞에서 조지의 가면을 무자비하게 벗겨 버리며 소리쳤다. “이것 보세요! 당신의 남편은 성자의 가면을 쓴 사악하고 야비한 인간일 뿐이라고요!” 하지만 가면이 벗겨진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고 말았다. 가면 속 조지의 진짜 얼굴이, 그가 그토록 흉내 내고자 했던 자애로운 성자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막스 비어봄(Max Beerbohm)의 소설 『행복한 위선자(The Happy Hypocrite)』에 나오는 얘기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천사와 악마라는 양면성을 품고 살아간다. 궁극적으로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성격이 급해 앞뒤 재지 않고 화부터 내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지면 사실보다 훨씬 부풀려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기도 한다. 때로는 내게 쏟아질 책임을 회피하고자 핑계를 대며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비겁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풍경들이기도 하다. 치열하게 일하다 잠시 숨을 고르는 동료에게 지금이 쉴 때냐며 면박을 주고, 평소 꼼꼼하던 사람이 어쩌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매사 덜렁대니 그렇다며 핀잔을 준다. 누군가 큰맘 먹고 예쁘게 단장을 하고 온 날 칭찬 대신 살이나 좀 빼라며 찬물을 끼얹기도 하고, 바쁜 일상에 쫓겨 냉장고 구석에서 채소가 시들어갈 때면 살림을 알뜰하게 하지 못한다며 날 선 잣대를 들이댄다. 이런 숱한 갈등의 순간들 앞에서, 우리는 왜 언제나 아무 말 없이 이해해 주고 실수도 너그럽게 눈감아 주는 사려 깊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다시 조지 헬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즉, 아주 오랫동안 좋은 사람인 척 행동하다 보면 결국 모든 사람이 그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훌륭한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는 통찰이다. 비록 처음에는 겉치레와 위선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선(善)을 향한 지향을 놓지 않고 꾸준히 ‘그런 척’하며 살아간다면 거친 천성조차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다. 위선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천성이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이 억지로 자신을 포장하는 일은 분명 고단할 것이다. 하지만 조지 헬의 기적처럼 우리도 일상에서 한 번쯤 이런 노력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누군가 미워도 좋은 척, 마음이 조급해져도 느긋한 척, 남의 허물을 알아도 모르는 척, 화가 치밀어 올라도 안 나는 척, 속이 상해도 괜찮은 척… 그렇게 매일 조금씩 ‘좋은 사람인 척’을 해보는 것이다. 그 가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단 하나의 조건,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슴속에 품은 채 말이다.

어느덧 찾아온 늦여름 8월의 아침, 풀잎 끝에 맺힌 영롱한 아침 이슬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투명하게 빛나는 그 작은 물방울들은 아침 햇살을 받아 오색찬란한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 맑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 이슬 나라의 공주가 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진짜 보석인가 싶어 살짝 손끝을 대어 보기도 한다. 손끝에 닿자마자 톡 터져버리는 찰나의 보석이지만, 그 짧은 순간이 주는 흐뭇함에 얼굴엔 물결처럼 잔잔한 미소가 번져간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이처럼 세상을 맑게 비추는 이슬 같은 본성이 숨 쉬고 있지 않을까? 단 하루를 살아도 보석처럼 영롱하고 고운 이슬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진다.

거북이는 단단한 등껍질 속에 몸을 숨기고 잔뜩 목을 움츠리고 있을 때, 아무리 힘이 센 장사라도 억지로 그 목을 빼낼 수 없다. 하지만 그 거북이를 따뜻한 화롯불 곁에 가만히 놓아두면, 스스로 경계를 풀고 슬그머니 목을 내밀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 역시, 억지로 윽박지르는 날 선 비난이 아니라 화롯불처럼 은은하게 다가가는 ‘따뜻함’에 있을 것이다. 내 마음 안에는 여러 모습이 공존한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도, 온갖 세파를 겪어낸 지혜로운 어른도, 천사와 악마도 함께 살고 있다. 삶의 중심을 잃고 방황할 때, 우리는 언제든 내 안의 ‘지혜로운 어른’을 만나 길을 물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내 마음에 달려 있고,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성자의 미소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은 서툴러서 가면을 쓴 위선자처럼 느껴질지라도, 언젠가는 그 가면이 나의 진짜 얼굴이 될 그 날을 기대하며 꾸준히 노력해보자. 살아온 날들보다 남은 날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치 곶감 꼬치에서 곶감을 한 개씩 빼먹다 보면 빈 꼬치가 되는 때가 금방 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지금 주어진 시간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해서 행복하게 지내기에도 너무 부족한 시간이다. 잠언 4장 23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는 성경 말씀을 상고하면서 행복한 위선자를 도전하는 8월이 되길 바란다.

월간 세탁인 독자님들을 참 ~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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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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