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리와 종 화잇헤드씨 부부는 지난 30년간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이 두 가계 중간 위치에서 세탁소를 운영해 왔다. 둘은 문 닫은 가게로부터 손님이 올 것을 기대했지만, 팬데믹은 이제 이 부부도 문 닫게 했다.
“남은 손님들이 얼마나 됐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기엔 부족했다”라고 개리 씨(61)는 말하면서 지난달 문 닫은 가게의 타일 바닥을 청소했다. “비즈니스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직장에 출근하지 않으면, 세탁소에 옷을 가져오지도 않습니다.”
팬데믹이 지난 2년간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꾸어 놓으면서, 북부 버지니아와 그 나머지 지역에서 스몰 비즈니스에 몰아닥친 경제적 결과는 낯익다: 맘-앤-팝 중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 곳이 있고, 버티지 못한 곳이 있다. 무접촉 “유령 식당” 또는 온라인-오운리 요가 등 변화를 시도한 사업가들과 가족 운영 비즈니스들은 아직도 정상으로 복귀를 기도하고 있다.
오번 클리너는 후자에 속했는데, 오미크론 변종이 나오면서 사무실 복귀가 늦어지고 말았다. 양복과 블라우스가 몇 달 더 옷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화잇헤드씨 부부는 이제 그만이라고 결심했다: 이 둘은 1990년대 초 사들여 세탁하고 다리고 포장했던 스토어를 이제 떠나려 한다.
또 하나의 세탁소가 코로나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됐다 – 8개 블록에서 세 번째이며, 세탁 산업은 회복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일부 업계 단체들은 연말까지 세탁소의 30%가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DC 지역과 대도시 지역에서 드라이클리닝은 오랫동안 이민자들이 중산층으로 가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많은 한인이 이 지역에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정착했다. 진입 장벽이 낮았고 언어의 벽도 낮았다. 또한 다른 세탁소 주인들이 돈이나 훈련 등으로 기꺼이 도와주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부터 많은 스토어들이 변화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가족 비즈니스를 물려받기보다 화이트칼라 직업을 택했다. 정장 위주의 워싱턴에서도 사무실들이 정장 기준을 늦추었고 그 결과 세탁소 수요가 줄었다.
프린스 조지 카운티에 자리한 업계 단체인 드라이클리닝 & 론드리 인스티튜트의 매리 스캘코 사무총장은 “처음에는 캐쥬얼 프라이데이더니, 나중에 캐쥬얼 에브리데이가 됐다”고 지적한다.
십대에 한국에서 이민 온 종 화잇헤드씨는 가족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컸고, 개리가 매릴랜드에 있는 미군 기지에서 통신장비 기술자로 일하는 동안 계속 가게 일을 도왔다.
1990년도 초 북부 버지니아로 이사한 후 그녀는 자신의 가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스트 글레브에 있는 오번 클리너를 인수했다.
팬데믹 전반에는 알렉산드리아 지역 세탁소 수가 비교적 변하지 않았다. 시 경제 개발국 자료를 보면 2019년 1월 54개에서 작년 1월 50개로 줄었다. 하지만 업계 단체들은 최악의 상황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미드아틀랜틱 클리너 협회의 피터 블레이크 사무총장은 10~15%를 차지하는 문 닫은 세탁소가 연말까지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협회는 DC, 매릴랜드, 버지니아 그리고 웨스트 버지니아에 350개 회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오리지널 코로나바이러스가 델타 변종으로 가고, 또 오미크론 변종으로 가면서 화잇헤드씨 부부의 앞날은 어두워졌다.
오번 클리너는 PPP로 융자를 두 번 받았고, “덕분에 조금 버틸 수 있었다”라고 개리 씨는 말했다. (다른 비즈니스는 작년 연방 기간산업 팩키지에서 제거된 특별 세금 혜택을 이용했다. 산업 단체들은 이 조항을 3월까지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화잇헤드씨 부부는 저축을 소진했다. 주판알도 튕겨 보았다. 가게를 찾는 손님도 있고, 서비스를 단축하는데도 계속 오는 손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두려운 것은 나머지 손님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