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조 피사니 : 드라이클리너에게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

드라이브-쓰루 윈도우에서 드레스 셔츠를 건네주고 있다. (Cindy Schultz / Albany Times Union)
[stamfordadvocate.com – 2022.06.09] 우리에게 지난주에 긴급한 전화가 왔다. 우리가 받는 긴급한 전화는 대개 내가 잠자리에 들어 꿈나라에서 헤매며 실제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새벽 2시경에 온다 … 전화벨 소리가 나를 꿈에서 깨워 지루한 현실로 되돌아오게 한다.

내가 수화기를 들 때, 나는 최악의 상황을 기대한다. 이런 시간에 오는 전화는 늘 그렇지 않은가? 위급상황에 대처하기에 전혀 준비가 안 된 파자마 차림으로 말이다. 내가 전화기를 귀에 대자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크리스털 시 계신가요? 저는 액슬입니다!!” (지난주엔 채즈였다.)

나는 섣불리 대답하면 액슬이건 채즈가 쇠몽둥이를 들고 현관 문 앞에 나타날 것 같아 살짝 겁이 났다.

좌우지간에 이 긴급한 전화는 드라이클리너였다. 그는 나에게 셔츠가 넉 달째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귀하에게 셔츠가 필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는 돈이 필요하다고. 나는 사과에 사과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드레스 셔츠를 안 입은 지가 꽤 됐다.

내가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던 옛날에는, 나는 항상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구두도 신었다) 출근했다. 그리고 금요일에 셔츠를 세탁소에 드랍하고, 다음 주에 픽업했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다른 모든 일처럼, 우리의 기준은 어떤 CEO가 “비즈니스 캐주얼”을 발명한 이래 계속 하락하고 있다. 비즈니스 캐주얼은 “캐주얼”로 후퇴를 했고, 이는 결국 “비즈니스 넝마”라고 불러야할 스타일로 바뀌었다.

그리고 코비드가 오면서 우리는 집에서 내복과 파자마를 입고 일했고, “비즈니스 게으름뱅이” 스타일이 탄생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직장, 교회 또는 특별 이벤트에 가더라도 옷을 제대로 입지 않고, T-셔츠, 운동복, 청바지, 레깅스 등을 입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의 드라이클리너들이 탈탈 털리고 있다.

나는 40년대와 50년대에 찍은 가족 앨범을 보면 깜짝 놀란다. 내 아버지와 친구들이 펨브로크 스트릿에 있는 빌 & 에디스 바 앞에 서서 멋진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반짝거리를 구두를 신고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문밖에 나서면 양복을 입었다. 요즘 정장을 입고 바에 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탱크 탑에 반바지, 그리고 멋 부린 눈물 프린트 정도가 고작이겠지.

학교 교장도 학생들에게 복장 규정을 지키라고 하지 못한다. 노출이 심하다고 집에 돌려보내지도 못한다. 불쌍한 스튜어디스는 노출 심한 옷을 입은 승객에서 비행 안전을 위해 좀 더 점잖은 복장으로 갈아입으라고 말하려 진땀을 흘린다. (옷을 완전히 입지 않았어도, 얼굴에 마스크를 써야 한다) 이런 스토리가 나오면 미디어가 모두 달려들어 규칙 집행자들을 청교도적인 독재자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청교도건 진보적이건 관심이 없다. 나는 지난 15년째 두드려 맞고 있는 드라이클리너가 불쌍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꼭 필요한 원조를 보내고, 21세기 이후 모든 학생 부채를 지우고, 나라의 기간구조물을 다 짓고, 코로나바이러스 체크를 다 끊고 나면, 의회가 다시 힘을 모아 미국의 드라이클리너들을 위한 구조 패키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들은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이제 또 다른 구조가 필요하다.

나는 셔츠를 픽업하면서, 클리너에게 팁을 두둑이 줬더니 셔츠 한 장에 $6 정도가 됐다. 그래도 가스 1갤런보다 싸다.

스탬포드 애드보킷과 그리니치 타임의 전 편집인 조 피사니 씨는 joefpisani@yahoo.com으로 연락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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