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년째 코로나와 씨름 중이다. 그로 인해 점점 더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를 가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서 웃는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으면서도 혹시 주변에 코로나 환자가 없는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행여 기침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바라보는 시선엔 경계심이 가득하다. 최근 들어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지인들의 부고를 자주 듣는 것도 큰 스트레스가 된다.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아픈 데는 많아지고 기운도 예전 같지 않아 의욕도 떨어진다. 애나 어른이나 각자 자기 스마트 폰에 몰두하느라 대화도 없으니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조차 알 수도 없다. 경기가 좋아졌다는 매스컴과는 달리 너무 치솟은 물가 상승은 장바구니를 초라하게 만든다. 세탁소 매상으로는 렌트와 인건비를 감당하기만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막연한 불안감에 싸여 있어 매사에 별일도 아닌데 예민하게 반응한다. 누군가를 배려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타인을 곤란하게 만든다. 계속되는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안타까운 현실이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이지만 곧 끝날 일이 아니라고 예상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 뉴올리언즈, 그해 여름 80세의 외모를 가진 아기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버튼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가 벤자민을 낳다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분노했다. 더구나 노인의 얼굴을 한 아들의 외모에 경악한 나머지 벤자민을 ‘놀런 하우스’ 양로원 현관 앞에 버린다. 그리고 놀런 하우스에서 일하는 퀴니에게 발견된다. 벤자민은 퀴니를 엄마로, 그곳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친구로 살아가면서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제 12살이 되어 60대 외형을 가지게 된 벤자민은 어느 날, 할머니를 찾아온 6살 나이 그대로의 어린 데이지를 만난다. 그리고 데이지의 푸른 눈동자를 영원히 잊을 수 없게 된다. 세월이 지나 제법 30대 중년의 모습이 된 벤자민은 바다를 항해하며 세상을 알아가고, 데이지는 뉴욕 무용단에 합류해 인생의 절정을 보내며 열정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끝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끝에 벤자민과 데이지는 마침내 서로 함께하는 ‘스윗 스팟(Sweet Spot)’의 시기를 맞는다. 서로의 나이가 엇비슷해진 짧은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던 벤자민과 데이지는 서로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용기를 내서 결혼하여 예쁜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깐, 벤자민은 날마다 젊어지고 데이지는 점점 늙어간다. 청년이 된 벤자민은 머지않은 미래에 아버지가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딸이 겪게 될 혼란과 아내에게 고통을 주게 될 것을 괴로워하다가 집을 떠난다. 시간이 많이 흘러 벤자민은 모든 기억을 잃은 어린애가 되어 데이지를 만난다. 영화는 아기가 된 벤자민이 할머니가 된 아내 데이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클로즈-엎 하면서 끝이 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 줄거리다. 정말 우리 인생의 시계가 거꾸로 간다면 어떨까?
자연스럽지 않은 내용을 소재로 만든 영화였지만 그들의 용기와 배려에 대해 잠시 생각이 머물렀다. 나이를 거꾸로 먹고 젊어져서 장차 어린아이가 될 남편과 나이가 들면 당연히 할머니가 될 아내, 그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움을 거스른 상황에서도 용기를 갖고 결혼을 하고, 그러나 앞으로 가는 시간과 거꾸로 가는 시간과의 혼란과 그로 인해 부딪치는 현실은 무척 가혹했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배려하기 위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안고 그들을 떠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한 일인가. 자연이란 한자로 ‘스스로 자, 그럴 연’으로 스스로 그렇다는 뜻이다. 누가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있었다. 사람은 예쁜 아기로 태어나서 귀여운 아이가 되고 의젓한 어른이 되고, 또 삶의 애환을 통해 의연한 노인이 된다. 자연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봄이 되면 새싹이 돋고 여름이면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겨울이면 모든 것을 털어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고 그러다 보면 또 좋을 때가 돌아온다. 지금까지 그렇게 반복되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것은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기도 하다. 숲을 들여다보면 어우러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키가 큰 나무는 무성한 잎과 가지로 그늘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큰 나무 사이엔 중간 크기의 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숲을 이룬다. 그 옆엔 일년생 풀들이 철철이 꽃을 피우고 또 그 아래는 늘 푸른 잔디가 공간을 채워준다. 그리고 미처 햇빛이 잘 닫지 않는 곳엔 이끼가 자라고 있다. 모두가 합해서 아름다운 숲을 이루어내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그들은 서로를 배려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잠시 생각해 보자. 우리의 인생이란 나그네가 걸어가는 여행길과 똑같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그 길에서 잠시 머무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각박하게 살아간다면 삶은 너무나 외롭고 슬픈 길이다.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 당겨주면 지금처럼 어려울 때를 견디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 존중해야 한다. 서로 따뜻한 격려의 말로 이 상황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아 주어야 할 때다.
브루스 라슨은 『바람과 불꽃』이라는 책에서 배려의 위력에 대해 이렇게 썼다. “캐나다 두루미라는 새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머나먼 거리를 날아 여행하는 조류입니다. 그들에게는 두 가지 눈에 띄는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한 마리가 항상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돌아가며 지도자 노릇을 한다는 점이지요. 둘째는, 한 마리가 앞장선 동안 나머지들은 그 지도자를 격려해 주기 위해 울어댄다는 점입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캐나다 두루미는 서로 도우며 격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멀고도 먼 거리를 용기를 가지고 힘있게 떠날 수 있다. 코로나로 더욱 답답했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다시 아지랑이 너울거리는 봄날이 왔다. 가녀린 가지 위에 살포시 앉아서 봄을 노래하는 빨강 깃을 가진 예쁜 새는 즐겁기만 한듯하다. 잠시 마실 나온 작은 들토끼가 두 귀를 쫑긋 새우고 새들의 합창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 이 모두가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평화로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도 함께 자연스러워지면 좋겠다. 코로나가 어떻고, 세탁소 매상이 바닥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무슨 색이든지 관계하지 말고 우리가 지금 맞이한 시간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제자리에 되돌아온다. 태풍이 지난 자리에도 언제 그랬냐 싶게 꽃은 다시 피고,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굳건하게 살아남아 있는 것들은 있게 마련이다. 코로나에서 벗어나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될 날도 곧 올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따뜻한 시선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어 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꼭 기억할 것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해주고 용기를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버틸 수 있게 하는 최고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란 성경 말씀처럼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주어서 아름다운 봄을 실어오는 3월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좋겠다.
월간 세탁인 독자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