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은 며칠이나 될까?

지난달에 지인들의 부고가 세 번이나 있었다. 60대, 70대, 그리고 90대였다.

61세였던 황 집사님은 새벽에 가슴 통증을 호소하시고 구급차로 이동 중에 소천하셨다. 그동안 아무런 증상도 없이 건강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무도 황망했다.

70 후반의 김 권사님은 심장 혈관이 나중에 막힐 수도 있다고 미리 수술했는데 수술 중에 돌아가셨다.

90대 어르신은 하반신 마비로 2년 동안 자녀들의 도움으로 지내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세상에 나오는 날은 정해져 있어도 떠나는 날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앞으로 점점 부고를 접하는 일은 더 자주 있을 것이다. 그분들을 떠나 보내며 슬픈 마음과 함께 이제 그 날을 준비하고 살아야 할 때임을 절감했다.

거의 20년 동안 병원에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임종 순간에 함께 해주는 호스피스 봉사를 하는 친구가 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놀랍게도 믿음이 있는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고 한다. 영원한 삶이 있다고 믿는 분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잘 믿고 살다가 그곳에서 다시 반갑게 만나자며 웃으며 평안하게 잠이 든다고 한다. 때로는 천사들이 많이 왔다면서 즐거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분들에게 죽음은 다시는 숨을 쉬지 않을 뿐 천국에서 다시 만날 기대를 하고 잠시 헤어지는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억울하고, 사후에 더 나쁜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숨이 진 후의 모습도 험하다고 한다. 또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기를 데려가려고 한다며 안 가겠다고 소리치며 버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누구에게도 예외 없을 죽음 앞에 지속되는 질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운전을 하다가 두 마리의 새를 보았다. 그들은 데이트하는 선남선녀인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넓은 창공을 훨훨 날아다녔다. 우리도 하늘을 날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그들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땅속에 있는 지렁이들이 생각났다. 그들도 하늘을 나는 새를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렁이들이 스스로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흙에 쓸려 내려갔거나, 누군가가 파종을 하느라 땅을 파지 않는 한 그곳에서 계속 살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지렁이들은 땅 위의 세상이 있고, 그 위에 하늘이라는 무한대로 넓은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새들이 날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혹시 누가 말해 주더라도 절대로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캄캄한 땅속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두 마리 새들이 다시 시야로 들어왔다.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새들은 땅 밑에 엄청나게 많은 지렁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 역시 스스로 땅을 파고 들어가서 땅속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누가 땅 밑의 지렁이들에 대해 말해 주면 믿을까? 그래도 쉽지 않을 것이다. 광명한 하늘에서 살아온 그들에겐 지속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사는 지렁이를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지 않고, 해보지 않은 것은 잘 믿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것도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에서 381m의 높이, 102층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올라갈 때, 그들의 믿음은 너무나도 견고하다. 엘리베이터 줄이 끊어져서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그러면 당연히 즉사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의심하며 엘리베이터를 타지는 않는다. 그냥 믿고 탄다. 그것은 엘리베이터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다. 자그마치 15,000피트 고도를 나는 비행기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아침마다 출근길 고속도로에 꽉 찬 자동차 사이를 80마일로 운전하는 일, 건물에 줄줄이 매달려 있어 언제라도 떨어질 수 있는 육중한 무쇠 간판들을 무시하고 건물 앞을 여유 있게 걸어가기도 한다. 이 모든 일에는 사고 발생 시 목숨이 담보되는데도 불구하고 담대한 것은 그런 일이 자신에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지만, 대부분 사람은 무조건 믿으려 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항상 걱정이 많다. 걱정은 곧 불안감으로 연결된다. 지금 건강해도 흉통이나 복통이 며칠 동안 지속하면 암에 걸렸을까 봐 두려워한다. 몇 년째 직장에 잘 다니고 있으면서도 혹시 감원대상에 들까 봐 상사 눈치를 살피며 불안해한다. 많은 종류의 두려움이 있지만 길어야 80-90세를 사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 문제를 피한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두려움은 죽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삶의 끝이라고 알고 있는 죽음, 과연 그럴까? 만약 죽음 이후에 어떤 형태로든 삶이 지속한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사람들은 더 두려워하지 않고 그 영원한 삶을 잘 영위할 방법들을 모색할 것이다. 잠시 죽음 이후에 삶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곳에서는 어떤 형태로 살게 될까? 정말 천국과 지옥으로 나뉠까? 천국이 좋다는데 그곳에 들어갈 수 있을까? 만약 지옥으로 가게 된다면 그곳에서 끝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영원히 살아야 할까? 계속 질문을 하더라도 그 누구도 시원하게 그 해답을 해줄 사람은 없다. 그런데 세상의 시작과 종말, 그리고 새롭게 시작될 또 다른 세상에 관한 모든 도면과 그 완성의 과정이 전부 그려져 있는 안내서가 있다. 바로 성경책이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믿을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다시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서의 삶이 더욱 행복해지고 우리의 상상으로는 가늠할 수 없이 아름답다는 천국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믿음을 잘 지켜 온 믿음의 선배들의 삶과 경험에 의해 입증됐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들이 말하는 축복은 무엇일까? 첫째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물론 죽음을 동반하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도 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곳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의 연장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이 생긴다. 새로 지은 좋은 집으로 이사 들어가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둘째로, 기쁘고 평안하다. 우리가 모두가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기쁨과 평안함을 토대로 한 행복이다. 어렸을 적 소풍길을 생각해 보자. 울퉁불퉁 산길을 지나다가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기도 하고, 모자도 없이 뙤약볕에 걷다 보면 얼굴은 벌게지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진다. 그래도 그곳에 도착해서 맛있는 김밥과 삶은 계란, 사이다를 마실 희망으로 즐겁기만 하다. 이제 다시 지렁이와 새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들은 서로 모르지만, 그들은 다른 곳에서 다른 모양으로 삶을 영위해 간다. 그들이 서로 모르는 세상을 우리는 보아서 알고 있다. 그것을 알려 주고 싶어도 그들과 소통의 언어가 없어서 안타깝지만 전달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의 존재를 우리는 성경이란 언어를 통해 배우고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각자의 뜻이지만 믿지 않고 계속해서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느냐, 아니면 성경 말씀의 모든 약속을 믿는 신앙생활을 통해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사느냐, 그 둘 중에서 후자를 선택하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을 시간이 며칠이 될지, 몇 년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후자를 택한 사람들의 복된 삶은 단순하게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마음먹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에 믿음은 우리의 노력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때부터 그분이 은혜로 우리를 믿음으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마치 아기가 자기 엄마를 인정하는 것과도 참으로 비슷하다. 아기로부터 엄마로 인정받은 엄마가 못 해줄 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성경 말씀을 지속해서 공부한다면 믿음을 가지는 일도, 믿음으로 사는 일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고 반문하는 우리에게 성경은 또 이런 해답을 보여준다. 로마서 1장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고개를 들어 신록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펼치고 있는 6월의 향연을 둘러보자. 그것은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해 있다.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이 저절로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성경 말씀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처럼 믿음으로써 우리 현재의 삶도, 미래의 삶도 6월처럼 영원히 아름다운 곳에서 살게 될 것을 믿게 되는 것이다. 로마서 10장 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요한복음 11장 26절,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로마서 14장 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는 성경 말씀을 상고하면서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복된 6월이 되기 바란다.

월간 세탁인 독자님들을 참~~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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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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