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트클리닝 초보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새로운 이론을 배워야 한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웨트클리닝의 기본 이론은 간단할수록 좋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지난 5월호와 6월호에 게재한 칼럼을 숙지한다면 그로써 기본 이론으로 충분하리라고 본다. 실제로 필자가 웨트클리닝을 교육시키는 데에 이론 설명으로 30분 이상을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잊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엔진의 작동 원리와 연료의 화학적 분석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교통법규를 잘 이해하고 안전하게 운전하면 그만이다. 웨트클리닝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기계적, 화학적 문제들은 기계업자나 케미컬 업자에게 맡기고 실전 사례를 통해 하나씩 터득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이번호부터 칼럼은 실전을 위주로 다룰 것이다. 그러나 부득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면 이론적인 배경 설명을 가급적 쉽게 첨부할 것이다.
눈물의 웨딩드레스
첫 세탁소를 팔아치우던 해였으니까 33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행복하게 보이는 앳된 신혼부부가 막 신혼여행을 마치고 나의 세탁소로 들어왔다. 신부는 웨딩가운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자랑스럽게 내용을 설명했다. 즉 신부의 친정어머니가 석 달 동안 정성을 다해 손으로 만든 가운인데 크고 작은 장미를 이백 송이나 달았다는 것이다. 신부는 먼 훗날 딸을 낳아 시집보낼 때엔 그 웨딩가운을 입힐 거라면서 오래 보관하게 상자에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과연 그 웨딩가운엔 수많은 하얀 장미 송이들이 조잡하지만 현란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신부의 기특한 마음에 감동을 받고 먼 훗날 있을 아름다운 결혼식을 위해 최선을 다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물로 빠는 것이 상책이다 싶어 집으로 가져와 욕조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웨딩가운을 푸욱 담그는 순간, 상상하지 못했던 초대형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가운을 흔들어 올린 순간 그 많던 장미들이 다 떨어지고 화장하지 않은 마누라 얼굴처럼 완전 민짜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놈에 신부의 친정 에미인지 뭔지는 장미 송이를 실로 꿰매 붙이지 않고 문방구용 풀로 붙여놓았던 것이다. 예쁜 장미송이 역시 천을 교묘하게 오려 접어서 풀을 발라 모양을 만들었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형체도 알 수 없이 풀어져 둥둥 떠다니는 가련한 장미 송이들을 국수 건지는 둥근 채로 건져 놓았다. 다음날 이백송이 장미들은 서로 엉겨 붙어 한 송이 거대한 밀전병으로 변신해 있었다. 고민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고민, 고민, 또 고민…
그때에 동생뻘 되는 스토어 매니저가 있었는데 주특기는 요상한 쪽으로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친구였다.
“형님, 이 세탁소 평생 할꺼유?”
“악담을 해라.”
“그럼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나한테 맡기슈.”
그는 웨딩가운을 상자에 쑤셔 넣고 (그래도 양심은 남았는지 그 밀전병은 비닐봉지에 넣어 상자 바닥에 정중히 모셔 놓았음) 테이프를 상자 주변으로 수십 번 칭칭 감아서 마치 중앙은행 금고처럼 개봉 절대불가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며칠 후 그 신부가 웨딩가운을 찾으러 왔다. 매니저 친구는 가운 박스를 테이블 위에 호기 좋게 올려놓고 서툰 영어로 말했다.
“이거 네 딸한테 줄 거라며?”
“Yes, yes.”
“한 이십 오년쯤 후에?”
“Yes, yes.”
“그때까지 절대로, never ever, 열지 마. 빛 들어가면 금방 누렇게 변하니까. Understand?”
“Yes, yes.”
박스를 들고 나가는 신부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지금쯤, 아마도 그 웨딩드레스는 세상 빛을 보지 않았나 싶다. 그 밀전병과 함께. 요즘 나에겐 이미 중년이 되었을 그 신부를 꼭 만나 보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민짜가 유행이라고 (이 글은 필자가 5년 전 미주 웨트클리닝 동호회 카페에 올렸던 것을 수정한 것입니다).
실크 웨딩드레스 처리
웬만한 세탁인이라면 그동안 웨딩가운 몇 벌쯤은 물로 깨끗이 처리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가의 100% 실크 드레스라면 선뜻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복잡한 주름과 부착물로 장식된 웨딩드레스라면 아마도 웨트클리닝 불가 판정을 내릴 것이다. 물로 처리한 후 심하게 구겨진 상태에서 피니슁이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실크의 감촉과 윤기가 손상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딩가운은 일반적으로 물로 처리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는 스테인이 많기 때문에 웨트클리닝이 상책이다.
웨딩가운 뿐만 아니라 모든 실크 류의 좋은 품질의 열쇠는 케미컬이 쥐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적정한 컨디셔너의 사용은 피니슁을 쉽게 해줄 뿐 아니라 실크 고유의 촉감과 윤기를 유지 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아래에 열거한 방법으로 고가의 실크 드레스 등을 실수 없이 상급의 품질로 처리해 오고 있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케미컬은 필자가 취급하는 아쿠아매스터 제품이 사용되었다.)
스테인 처리
웨딩가운의 스테인은 대부분 땅에 끌리는 아랫자락에 있다. 이는 아스팔트나 도로상에 흘린 자동차 기름, 흙, 먼지 등이 뒤범벅이 된 고약한 물질이다. 대부분의 웨딩가운은 합성섬유이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처리되나 실크의 경우엔 과도하게 문지르거나 비벼대면 조직에 결정적인 손상을 주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조직을 상하지 않게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중성에 가까운 스팟팅 케미컬인 스테인 아웃을 물과 1대1로 섞어 스테인 부분에 분사하여 부드러운 솔로 부비면서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웨딩가운의 밑자락은 면적이 워낙 커서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두 번째 방법은 5갤런 통에 물 3갤런과 스테인 아웃 12~16온스를 섞어놓고 가운의 아랫자락을 돌려가며 손으로 부드럽게 비벼 처리하는 방법이다. 시간도 절약될 뿐 아니라 스테인도 깨끗하게 지울 수 있고 실크의 조직도 상하지 않게 보호하면서 처리할 수 있다.
빨래와 세제의 선택
빨래 요령은 물을 많이 넣어서 직물이 비벼댐이 없이 빨아야 좋다. 특히 색이 진한 실크 드레스인 경우, 물을 적게 넣는다면 마찰로 인해 부분적으로 희끗희끗 색이 마모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웨딩가운의 백미는 색감이 눈부시게 희다는데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산성 비누를 선호한다. 알칼리성 비누를 사용하면서 완벽하게 린스 하지 않는다면 (린스를 아무리 잘한다 해도 남아있는 알칼리를 완벽히 제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빨래 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점 누렇게 색이 변하기 마련이다. 이와 반대로 산성 비누는 흰색을 오랫동안 유지시키는 장점이 있다. 당장이야 괜찮다고 하겠지만 먼 훗날 아름다운 결혼식을 생각하시고 필자처럼 후회하지 않기 바란다.
린스와 컨디셔너 처리
실크 웨딩드레스의 품질은 컨디셔너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컨디셔너는 실크의 잔주름을 펴주고 직물을 부드럽게 해 주기 때문에 다림질을 한결 쉽게 해준다. 또한 실크 고유의 색상을 더욱 선명하게 해주고 윤기를 유지 시켜준다. 50파운드 워셔를 사용한다면 마지막 린스 때 12온스 정도를 넣어준다.
탈수와 건조
실크 웨딩가운은 탈수(Extraction)를 하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즉 드레인(배수)만 충분히 시키고 물이 흘러 떨어지는 상태로 걸어 말린다. 이는 탈수 과정에서 원치 않는 주름이 강하게 잡히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루쯤 지나 거의 말랐다고 여겨질 때 중간 온도로 (45~50℃) 텀블 드라이 한다면 직물에 함유된 컨디셔너가 역할을 해주어 잔주름을 거의 세탁 이전의 상태로 없애 준다.
이때 주의할 점은 건조할 때 약간의 습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점은 모든 웨트클린의 건조에도 마찬가지다. 직물이 바짝 마른 상태에선 텀블 드라이를 아무리 오래 해도 잔주름이 잘 펴지지 않는다. 만약 바짝 말랐다면 드라이어에 넣기 전 약간의 물을 분사하는 것이 좋다.
실크 웨딩드레스를 위의 방법대로 처리한다면 우려하는 피니슁 문제는 거의 없어진다. 또한 드라이클리닝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깨끗하고 우수한 품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양수
필자는 아쿠아매스터 웨트클리닝 케미컬 개발자이며, 100% 웨트클리닝 스토어인 그린 라이프 클리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201) 699-7227 또는 yangkim50@gmail.com로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