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적한 시골 마을에 농부 내외가 살고 있었다. 남편은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고된 농사일이 이어졌지만, 그는 불평 대신 묵묵히 땀을 흘렸다. 반면 아내는 달랐다. 마음속엔 늘 부족함이 먼저 보였고, 말끝마다 불평이 따라다녔다.
어느 날 밤, 남편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흰 수염의 노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동쪽으로 십 리쯤 가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듯 가장 크게 자란 나무가 있을 걸세. 그 나무 중간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는데, 손을 넣어 그 안에 있는 것을 꺼내게. 그것이 자네와 자네 가족에게 평생 아주 특별한 선물을 안겨줄 것이네.” 아침이 되자 남편은 그 꿈 이야기를 아내에게 전했다. 뜻밖에도 아내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 좋은 꿈 같아요. 마침 어제 딴 과일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니, 가는 길에 그 나무가 있는지 한번 찾아봐요.”
부부는 장터로 가는 길 내내 동쪽을 향해 두 팔을 벌린 나무를 찾으며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실망한 듯 조용히 말했다. “여보, 아무래도 개꿈이었나 보오. 평생 특별한 것이란 게 어디 있겠소.” 그때였다.
아내가 갑자기 소리쳤다. “여보, 저기 보세요! 정말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것 같은 나무예요.” 두 사람은 반가움과 설렘을 안고 그 나무로 달려갔다. 신기하게도 꿈에서 들은 말처럼 나무 중간에는 작은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남편은 아내를 업어 올리며 말했다.
“내가 받쳐줄 테니, 손을 넣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시오.” 아내는 조심스럽게 손을 넣어 이리저리 더듬었다. 곧 손끝에 둥글고 따뜻한 것이 잡혔다. 꺼내보니 작은 새알 두 개였다. “ 이게 다예요?” 아내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새알 두 개가 무슨 특별한 선물이래요. 이왕 꺼낸 거나 깨서 먹읍시다.” 그때 남편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여보, 다시 제자리에 두는 게 좋겠소. 알을 품던 어미 새가 돌아오면 얼마나 슬프겠소.”
그 순간, 한 알이 저절로 깨지며 새끼 새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한 알은 집으로 가져가세요. 그리고 두 분이 정말 원하는 소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그 알을 깨세요. 다만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부부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그들은 매일같이 소원에 관해 이야기했다. 소박한 남편은 소 한 마리만 있으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은 복잡했다. 큰 집, 넓은 땅, 가득 찬 축사, 끝없이 차오르는 돈 항아리…. 단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결정을 더욱 어렵게 했다. 결국, 그들은 새알을 고이 싸서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다. 아직 소원은 정하지 못했지만, 옷장 안에 ‘언젠가 이루어질 희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이상한 변화가 찾아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아내의 입에서 불평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을 언제든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자, 움켜쥐려던 욕심도 서서히 풀어졌다. 부부는 더 밝아졌고, 서로에게 더 다정해졌다. 일도 전보다 훨씬 즐겁게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삶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땅을 사고, 논을 사고, 소를 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집도 장만했고, 자녀들과 함께 풍요롭고 평안한 삶을 살게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는 늘 새알이 소원을 이루어줄 거라 믿고 살았소. 그 믿음 덕분에 희망을 품고 기쁘게 일했고, 그러다 보니 새알을 깨지 않아도 우리가 원하던 것을 모두 얻게 되었구려. 새알은 한 가지 소원이 아니라,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 준 셈이오.”
요즘은 우울한 소식이 더 많이 들려 온다. 정부의 반 이민 정책으로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급작스러운 직원 감원은 생계의 위협을 느끼게 한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지속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고물가에 사람들은 지갑을 닫고 있다. 경기 침체, 문을 닫는 가게들,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재해,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인한 고통.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두려울 때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우리에게도 소원을 들어줄 새알이 있을까?’
주변을 돌아보면 같은 일을 해도 유난히 잘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밝고, 유머가 있고, 낙천적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될 거예요”라고 말 긍정적으로 말한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묘하게도 힘이 나고, 가능성이 보인다. 반대로 늘 일이 꼬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하고, 말끝마다 “안 된다”는 말이 따라온다. 함께 있으면 마음에 답답해지고 불안해진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능력이 아니라 믿음이다. 즉, 잘 될 것이라 믿는 마음, 반대로 안 될 것이라 믿는 마음의 차이다. 어린아이들이 부모 품에 안겨 있을 때 몸을 뒤로 젖히며 장난을 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아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반드시 필요할 때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농부 부부가 옷장 안의 새알을 믿었던 마음과 너무도 닮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잘 될 것이다’라고 마음에 정하는 것, 그리고 너무 먼 미래까지 앞당겨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믿음이 삶을 만들고, 태도가 길을 낸다. 즉, 우리 마음의 밭을 늘 부드럽게 갈아두면, 어떤 비가 내려도 결국은 스며들어 푸른 들판이 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새알’을 찾아보자.
매일, 매 순간,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 하라는 성경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3월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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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