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들이 처음 운전을 시작할 때의 일이다.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보호자 동승 하에 운전할 수 있는 퍼밋(Permit)을 받은 그는 들떠 있었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운전하던 중 앞차 뒤를 너무 바짝 따라갔다. 엄마는 “좀 떨어져서 운전해”라며 여러 번 주의를 시켰지만, 아들은 “괜찮아, 나 잘 알아” 하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앞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좌회전을 했고, 그 뒤의 차도 급정거할 수밖에 없었다. 놀란 아들은 핸들을 급히 틀었지만 결국 앞차의 후미를 들이받고 말았다. 차는 망가졌고 바퀴도 찢어졌다. 아들은 겁에 질려 있었고 엄마는 너무 화가 났다. 그러나 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하더니 차분히 말했다. “잘했다. 이번 사고는 큰 교육이 되었을 거야. 이제부터 앞차와의 거리의 중요성을 몸으로 알았겠지.” 그 순간 아들의 얼굴이 환해졌고, 그 후 그는 누구보다도 조심스럽고 모범적인 운전자가 되었다. 만약 그때 화를 냈다면 아들은 평생 운전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칭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교훈을 칭찬으로 바꾸어 준 것, 그것이 인생 교육의 지혜였다.
아인슈타인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이 학생은 집중력이 없고 산만해서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 말을 보고 낙담한 아인슈타인에게 어머니는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단다. 선생님이 네 천재성을 못 알아본 것뿐이야. 산만하다는 건 많은 걸 알고 싶어 한다는 뜻이야. 나는 네 잠재력을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 믿음과 격려의 말이 오늘날의 상대성 원리를 세상에 탄생시켰다. 칭찬과 믿음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얼마 전 교회에서 만난 한 성도님은 작은 체구에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항상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만날 때마다 “오늘도 옷이 참 예쁘네요.” 하고 칭찬을 건넸다. 시간이 지나면서 옷차림뿐 아니라 그녀는 따뜻하게 웃는 얼굴로 변해갔다. 우리는 점점 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 처음에는 칭찬이 입발림처럼 들렸어요. 하지만 자꾸 듣다 보니 정말 그런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졌어요.”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자 그녀는 더욱 자기관리에 힘쓰고, 다른 사람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칭찬이 사람과 사람을 따뜻하게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한 심리학자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교사에게 무작위로 학생들을 골라 “이 아이들은 앞으로 성적이 크게 오를 아이들입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교사는 그 학생들을 자주 칭찬하고 격려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모든 학생의 성적이 실제로 향상된 것이다. 이 현상을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부른다. 그리스 신화에서 키프로스 왕 피그말리온이 미녀 조각상을 사랑하자 신이 감동해 그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칭찬과 믿음은 그 자체로 생명을 불어넣는 힘이다.
우리는 칭찬받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정작 칭찬하는 일은 서툴다. 칭찬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체질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칭찬을 하지 않으면 칭찬 거리가 보이지 않고, 칭찬이 습관화되면 칭찬할 일만 보인다는 것이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은 대체로 지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인간은 지적을 받으면 자신을 방어하려 공격적으로 변하고, 자신감도 잃는다. 칭찬은 칭찬 거리를 찾는 데서 시작된다. 긍정적인 눈으로 보면 칭찬할 일이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예쁜 곳이 하나쯤은 있다. 눈이 크지 않아도 맑고 예쁜 사람이 있고, 얼굴이 넓적해도 복스럽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 비싼 옷이 아니어도 조화를 잘 시켜 멋있게 입는 사람이 있고, 고급 식재료가 없어도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느릿하게 일하지만 꼼꼼하게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고, 종종 실수하지만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다양한 장점들 속에서 칭찬할 점을 본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칭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칭찬은 귀로 먹는 보약과 같다고 한다. 한마디의 칭찬이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은 칭찬을 갈망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이라 했고, 프로이트 역시 “사람은 공격에는 저항할 수 있지만, 칭찬에는 무기력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칭찬의 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말은 사람의 향기와 같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독한 냄새가 나면 곁에 두기 어렵지만, 모양은 수수해도 향기로운 꽃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말 역시 그렇다. 한마디 말로 사람을 위로할 수도 있고, 낙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 교만한 말은 불행을 부르지만, 겸손한 말은 행복을 불러온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참 잘했어”, “너는 최고야!”, “기도할게!”, “너는 잘 될 거야!” 같은 짧은 말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사람은 온종일 많은 말을 한다. 그러나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인격이며 생각이고 사랑이다. 성경은 말한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약 3:6)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잠 18:21) 말씀처럼 우리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 유명한 탤런트가 악플을 견디지 못해서 삶을 마감한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반면에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후에 성공한 유명 강사의 엄마는 딸에게 항상 “너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라는 격려의 말을 듣고 자랐다. 그 엄마의 말대로 그녀는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강연자가 되었다.
같은 말이라도 “왜 또 늦었어? ” 대신 “바쁜데 빨리 오느라 수고했어!”, “또 실수야?” 대신 “지난번보다 훨씬 나아졌네!”, “왜 전화를 안 받아?” 대신에 “별일이 없어서 감사해!”라고 바꿔보자. 이처럼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면 불편한 마음이 물러가고 그 자리에 따뜻한 마음과 감사가 찾아온다. 좋은 말이 향기가 되어 마음에 남을 때 우리의 일상은 행복하고 따뜻해짐을 기억하자.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육체는 쇠잔해지고 아픈 곳이 많아진다. 정치와 경제는 점점 어렵고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도 항상 마음이 즐거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올려다본 가을 밤하늘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떠 있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마음에 스치더라도 달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평안과 희망이 칭찬을 통해 채워진다. 이렇듯이 칭찬은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꽃피우는 힘인 것이다. 칭찬의 한마디가 자신감을 주고 용기를 더해주며 서로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잠언 16장 24절 “선한 말은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라는 성경 말씀을 상고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11월이 되면 좋겠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따듯한 한마디 말이 우리와 함께 하는 그 누군가의 오늘을 행복하게 바꿀 수 있음을 기억하자.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월간 세탁인 독자님들을 사랑합니다.
				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