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오늘이!

추운 겨울을 채비하는 11월엔 추수 감사절이 있다. 신대륙에 도착한 첫해에 영국의 청교도들은 얼마나 좋은 일들로 그토록 감사했기에 추수 감사절을 만들었을까? 그들이 미국에 도착했던 1620년 12월은 엄청 추울 때였다. 백열 명으로 출발한 사람들은 긴 항해로 지쳤고, 괴혈병과 영양실조로 반 이상이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감사의 예물로 보잘것없는 옥수수와 칠면조를 잡아 정성껏 준비해 감사 예배를 드렸다. 절반이 죽은 것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나머지 절반이 살아남은 데에 대한 감사였다. 그들의 감사는 너무 놀랍다. 그런데도 진실로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다. ‘Thank(감사)’의 어원은 ‘Think(생각)’이다. 감사의 마음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해 볼 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느껴진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할수록 감사는 물결의 파문처럼 번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찰스 스펄전 목사는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빛을 주신다”라고 말했다. 작은 일부터 감사하는 마음은 곧 큰 감사 거리를 가져다준다.

아기가 태어나 말문이 열리고 나서 처음 배우는 말이 ‘엄마’이고 그다음이 ‘고맙습니다’라고 한다. 재미있는 예화가 있다. 옛날 희랍 신화에 제우스 신이 두 시종을 불러서 각각 바구니 하나씩을 주었다. 그리고 한 시종에게는 지상에 내려가 인간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불평과 불만을 찾아 담아 오고, 반대로 다른 시종에게는 감사만 찾아 바구니에 담아 오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시종이 불평과 불만을 바구니에 넘치도록 담아서 올라왔다. 그리고 말하기를 지상에 내려가니 불평과 불만이 너무도 많아 금방 담아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사를 찾아 떠난 다른 시종은 몇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구니를 다 채우지 못해 인간 세계를 헤매는 중이라고 한다. 감사를 찾으러 간 그 시종은 언제 바구니를 다 채워 돌아올 수 있을까?

감사가 살 수 있는 물건이라면 감사하기가 조금은 쉬울 것 같기도 하다. 마음속의 생각들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불만스러운 일도 감사가 될 수 있고 반면에 감사해야 할 일들도 종종 불평이 되기도 하는 것이 흥미롭다. 사랑스러운 Wife가 자신의 Life를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동반자이지만, 온통 매몰찬 비난의 말들로 바가지를 긁으면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Knife가 되기도 한다. 힘들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평안한 쉼으로 들어가야 하는 Bed time에 별일 아닌 얘기로 시작된 부부간의 대화가 다툼으로 이어지면 Bad time이 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것이 단지 철자 한 개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련한 마음의 고향 같은 아름다운 별을 의미하는 star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상처를 의미하는 scar도 철자 한 개의 차이일 뿐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하고 어떤 상황에도 감사한다면 영롱함으로 반짝이는 기쁨의 별(star)이 되지만,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면 마음의 별을 흐리게 하여 상처(scar)로 남는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놀랍게도 알파벳 한 글자가 정반대의 뜻으로 바뀐다.

물을 연구한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의 저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은 매우 흥미롭다. 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눈(雪)처럼 결정체가 있다. 물 한 방울을 유리에 떨어뜨리고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연주를 틀어 놓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물의 결정이 맑고 아름답게 정돈된 형태를 보여 준다. 반대로 분노와 반항의 언어로 가득한 거친 헤비 메탈 곡을 틀어 주면 엉망으로 깨진 모양을 이룬다. 또 ‘감사해요, 사랑해요’ 같은 말을 들려주고 찍었다는 물의 결정은 육각으로 아름답게 형성되어 있었고, 욕설, 불평 등으로 비난한 결정은 흉한 모양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이 실험을 통하여 찍은 사진을 보면서 너무도 판이하게 이루어진 결정체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문득 현미경을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어떤 모양의 입자가 형성되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얼마 전에 120세까지 보장된다는 생명 보험 광고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생이 길어야 70~80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100세 이상이 회자한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 절대 짧지 않다. 길고 긴 인생길을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지만 어렵고 힘들 때도 많다. 사람들이 태어 날 때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유아기 때는 먹는 것에, 10대에는 학교 성적에, 20대는 사랑에, 30대는 일에, 40대는 성공에 대한 열정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신체 부분의 여기저기서 투덜거림이 들려 오는 50대 중반이 되면 그제야 살아온 세월을 반추한다. 기운이 달려서 멈추게 되고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정말 후회 없이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할 자 그 누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항상 위의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늘 부족하다. 그런데, 자신은 정말 잘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삶 속에서 항상 감사를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인생은 언제나 넉넉했고 행복한 삶을 살아낸다. 우리는 어디에 속해 어떠한 삶을 살아왔을까?

얼마 전 한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항상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인데 요즘은 몸이 좋지 않아서 잠시 일을 쉬고 있었다. 누구든지 몸이 아프면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그 친구도 그럴 것 같았다. 아픈 그녀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려고 만났는데 의외로 그 친구는 씩씩하고 명랑했다.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쉬게 되었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볼 여유를 갖게 되어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니 아픈데도 감사하다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120을 산다는데 몇 달 쉬는 거 아무것도 아냐, 그저 잠시 쉬어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하나님이 주신 휴가야”라고 덧붙였다. 그 친구의 생각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을 감사로 연결했다. 그녀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슨 감사 거리를 찾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밤에 잠들어서 만약 내일 아침에 깨어날 수 없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만약 오늘이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면 바가지를 긁어 대는 아내의 짜증스러운 말투도 감미롭고 귀엽기만 한 노랫소리로 들릴 것이다. 항상 고집불통에 큰소리만 떵떵 치는 남편이라도 만약 오늘까지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듬직하기 그지없을 것 같다. 그리고 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으로 괘씸하게 느꼈던 자녀들에게도 자상한 목소리로 부모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했는지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로 마음을 상하게 한 이웃이나 친구들에게도 그동안 고마웠다고, 자신으로 인해 섭섭했던 일들은 모두 용서하고 이해해 달라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모두 천년만년, 아니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오늘을 낭비한다. 그래서 아프고 상처받은 과거에 집착하여 괴로워하기도 하고 어떤 모습으로 다가설지 모르는 미래를 미리 염려하여 불안해한다. 정작 자신의 마음대로 이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오늘은 모두 무시한 채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과거도 오늘 같은 하루가 지난 시간이었으며 미래 역시도 앞으로 맞이할 오늘 같은 하루라고 생각한다면 후회로 점철된 과거는 좋은 스승이었고 미래는 희망으로 꿈꿀 수 있는 보물섬이 될 것이다. 그 오늘을 위해서 하루에 한 번씩 일 분 만이라도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소중하기 그지없는 오늘이라는 인생 바구니를 감사로 가득 채워 행복의 지름길로 달려갈 힘과 자신감이 용솟음칠 것이다. 지금 자신에게 없는 것, 가질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 억울하게 빼앗긴 것들을 바라보지 말자. 현재 가진 것이 작고 초라하다고 느낄지라도 오늘 누리고 있는 것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 바란다. 그렇게 얻어진 감사의 마음을 통해 넘치도록 갖고 있으나 미처 깨닫지 못했던 숨겨진 부유함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늦가을 코발트 빛 하늘은 한층 더 높다. 더 멀리 올라간 하늘 아래엔 금방 타 놓은 햇솜처럼 새하얀 뭉게구름이 이부자리를 펴 놓았다. 그 사이로 따뜻한 가을 햇살이 내리고 있다. 문득, 어린 시절 엄마가 이불 홑청을 빨아 새로 꿰매시느라 대청에 펴 놓으면, 아이들은 그 위로 잽싸게 올라갔다. 이불 꿰매게 내려오라는 엄마의 따뜻한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쌔근쌔근 곤히 잠든 아기에게 엄마가 살며시 덮어 준 이불처럼, 어린 손주들을 달래느라 꼭 안아 주시던 할머니의 따스한 품처럼, 스쳐 지나가는 가을 햇살 같은 포근함을 잊고 사는 때가 많지는 않은지… 그러고 보면 사소한 일상에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정한 감사를 우려낼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행복한 삶에 가까워지는 것임이 틀림없다. 성경 빌립보서 4장 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어떤 상황도 감사로 채우는 11월이 되기 바란다.

월간 세탁인 독자 여러분을 참~~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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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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