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신경 정신과 박사 팀이 믿음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험을 했는데 그들이 밝혀낸 실험 결과는 대단히 흥미롭다. 박사는 실험 대상자들을 인공 암벽에 오르게 했다. 암벽 아래를 내려다보라고 한 후 높이에 대해 인식하게 했다. 그리고 눈을 안대로 가리고 로프를 붙잡으라고 했다. 실험 대상자들이 안대로 눈을 가린 사이에 암벽 밑에는 안전 네트를 설치했다. A 그룹에는 로프에서 손을 떼면 바로 밑으로 떨어질테니 꼭 붙잡으라고 말했다. 또 다른 B 그룹에는 암벽 밑에 안전 네트가 있으니 손을 놓아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A 그룹은 모두 후두두 떨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B 그룹은 거의 두 배나 가까운 오랜 시간 동안 로프를 붙잡고 있었다. 그들은 손을 놓아서 떨어지더라도 밑에 안전 네트가 있다는 믿음으로 더 오래 버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실험 참가자들도 너무나 대조적인 결과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실험에서 박사팀은 A 그룹은 ‘나에게 도움이 있다’라는 믿음은 마음에 안정감을 주어 끈기를 가지고 오랫동안 버티게 했고, 반대로 아무런 도움이 없음을 인식하고 있는 B 그룹은 금방 불안해졌고 더 빨리 힘이 빠진 것을 확인했다. 박사팀은 이 실험을 통해 도움이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잠재 능력을 훨씬 더 많이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심리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잠재력의 30%조차 발휘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천재 아인슈타인 박사도 자기 잠재력의 15%만 사용했을 뿐이라고 하니 아직 개발되지 않은 채 묻혀 있는 70%의 잠재력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숨겨진 잠재력을 찾아낼 수 있을까?
여기서 잠깐, 우리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자. 일반적으로 부모님이 계시면 대부분은 생활에 여유가 있든지 없든지 관계없이 아이들은 부모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부모님들은 그분들의 최선을 다 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 주셨고 학교도 보내주셨다. 아이들이 할 것은 잘 먹고 자고, 잘 놀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온전히 부모님을 의지하고 믿으며, 또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준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를 믿지 못하거나 반항해서 집을 나가게 되면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는 그 길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다. 두 경우 아이들의 성장 과정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극과 극이 된다. 이것도 믿음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부모에 대해 믿음이 있는 아이들이 잘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두 종류로 나뉠 수 있다. 신앙이 있어 믿음 생활을 해온 대부분의 사람은, 좋을 때나 힘들 때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함을 통해 물질적 풍요를 떠나서 심리적으로 매우 평안하게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힘만 의지하고 살아온 사람은 성공했거나 그렇지 않은 것과 관계없이 자신의 지난 세월은 너무 고단했으며 허무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무슨 차이일까? 그것은 바로 의지할 대상이 누구였느냐의 차이다. 우리 뒤에 든든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기준을 갖고 살아간다.
첫째, 확실한 자기 비전을 세운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무엇을 갖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들은 무엇인지 등등, 간단하고 명료하게 구체적인 그림을 그린다. 마음속에 이러한 영상들을 채우면 자연스럽게 목표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잠재의식 안에서 그 영상이 이끄는 대로 삶의 비전에 맞춰 살게 된다.
둘째, 긍정적인 사고로 무장한다.
그들의 내면에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워진다.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기 비전이라는 꽃을 피우는 데도 필요한 자양분들이 있다.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은 원하는 일이 잘 되면 또 다른 일에 도전해서 도약의 발판으로 삼고, 반대로 실패했을 땐, 절망이 아니라 다시 시도해 볼 용기를 갖는다.
셋째, 자신감을 갖는다.
자신감은 모든 것을 해낼 힘의 원천이 된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신뢰와 존중은 현실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그 사람을 최고로 만든다. 세일즈맨을 기업가로, 웨이터를 레스토랑 주인으로, 골프 캐디를 프로 골퍼로, 옷 수선공을 패션 디자이너로, 프레스맨을 대형 세탁소 오너로, 트럭 운전사를 통운회사 사장으로, 작은 동네의 편의점을 국제적 유통 업체로,가난한 이민자를 대통령으로… 등등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최고’들의 시작은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었다. 그들 중에 크리스천이 많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이하게도 ‘불가능과 가능’의 사이에는 알파벳 한 글자의 차이가 있다. 불가능이란 단어 ‘임파서블’(impossible)에 ‘a’자 한 글자만 더하고 띄어쓰기만 하면 ‘아이 엠 파서블’(I am possible) 즉, ‘나는 가능하다’라는 의미로 변한다. 요한 계시록 1장 8절 “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A)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즉, 알파(A) 이신 전능자 하나님이 함께 도와주시니 무슨 일이든 더욱 가능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마치 우리가 부모님의 도움으로 잘 성장한 것과 비슷하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서 더 노인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핸드폰으로 녹화한 영상으로 유튜브를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 Chat GPT에 궁금한 것을 묻고 답을 얻기도 한다. Chat GPT는 정말 만능박사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TV 만 보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이 너무도 길어졌다.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면 Chat GPT에 무엇을 배우면 좋을까 질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00살이 넘으신 노교수의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라는 칼럼을 읽으며 도전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나이가 들어 육체가 조금 쇠잔해졌을 뿐 우리 마음은 여전히 새순처럼 청춘이지 않은가? 지금 인생 후반기가 시작되었거나 조금 더 지났더라도 자신의 잠재 능력을 찾아 발전시킨다면 삶은 기쁨이 넘치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임을 확신하자.
사과 꽃향기 날리는 봄날의 산책을 즐거워했던 때가 불과 한두 달 전이었는데 어느새 꽃이 있던 자리에는 작은 사과들이 송송 매달려 있다. 두 달쯤 더 있으면 새콤달콤한 사과 맛을 보게 될 날도 속히 올 것이다. 그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을 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던 능력이 어느 날 대단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과도 비슷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숨겨진 역량을 찾아내어 활력 있게 산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Impossible’이 아닌 ‘I am Possible!’ 모든 것이 가능하다. 우리가 매달려 있는 ‘삶’이라는 암벽 밑에는 하나님께서 받쳐 놓으신 안전 네트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믿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숨겨진 능력을 찾아내어 자신과 이웃을 위한 열정으로 가득 채워보면 어떨까?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성경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새로운 열정으로 넘치는 6월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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