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햄프셔에서 가장 오래 된 세탁소

블루 리본 클리너 근 백 년간 이어진 가족의 유산


브라이언 필즈엔드 씨가 다린 바지를 정리하고 있다.

[unionleader.com – 2026.05.02] 미국 뉴햄프셔주에서 가장 오래된 드라이클리닝 업체인 블루 리본 드라이클리너스(Blue Ribbon Dry Cleaners)가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가족 경영의 전통을 이어가며 지역사회와 함께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매장 안에서는 지금도 컨베이어 시스템(storeveyor)을 따라 비닐 커버가 씌워진 의류들이 움직이며 금속 옷걸이 부딪히는 소리와 기계음이 끊이지 않는다. 1929년 브라이언 필즈엔드(Brian Fieldsend)의 증조부 피터 니콜스(Peter Nichols)가 뉴햄프셔 엑시터(Exeter)에서 창업한 블루 리본은 수많은 얼룩과 고객들의 사연을 품으며 세월을 견뎌왔다.

현재 블루 리본은 뉴햄프셔주에서 가장 오래도록 운영 중인 드라이클리닝 업체로 기록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긴 역사만큼이나 업계 변화와 경영난도 함께 겪어야 했다.

드라이클리닝 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큰 타격을 입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정장과 오피스웨어 수요가 급감하면서 전문 세탁 서비스 이용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블루 리본은 살아남았고, 1967년 포츠머스 애비뉴(97 Portsmouth Ave.)에 세워진 현재 건물 역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원래 다운타운 엑시터에 위치했던 블루 리본은 포츠머스 애비뉴로 이전하면서 코인 세탁소(laundromat)를 추가했으며, 지금까지 6세대에 걸쳐 가족 구성원들이 사업에 참여해왔다.

필즈엔드는 오히려 오래된 매장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는 “우리는 1960년대 쇼핑몰 같은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블루 리본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역사 연구자들이 매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초기 스트립몰(strip mall) 디자인을 좋아하는 이들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현재 73세인 필즈엔드와 그의 아내는 지난 10년 동안 은퇴와 함께 사업 매각을 고민해왔다. 지난해에는 해당 부지를 복합용도 건물로 재개발하려는 계획이 지역 계획위원회에서 거부되면서, 가족은 다시 카운터 뒤로 돌아와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현재 부지 개발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며 “계획이 성사되면 미국 곳곳을 여행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증조부가 시작한 드라이클리닝 사업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블루 리본 클리너의 창업자인 피터 니콜스 씨와 그의 아내 아만다 여사.

창업자인 피터 니콜스는 원래 캐나다 출신 재단사였다. 그는 1919년 엑시터 다운타운에서 양복점을 열었고, 당시 의류 관리 방식의 한계를 느끼며 드라이클리닝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필즈엔드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 시절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이었고 옷에는 먼지가 가득했다”며 “울과 면 같은 천연섬유 의류는 시간이 지나며 얼룩과 먼지를 가리기 위해 점점 더 어두운 색으로 염색되곤 했다”고 설명했다. 니콜스는 이를 깨끗하게 세척할 방법을 찾았고, 이후 1929년 블루 리본 드라이클리너스를 설립했다.

드라이클리닝은 물 대신 용제를 사용해 섬유 속 오염물질과 얼룩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특히 실크, 울, 캐시미어 같은 섬세한 소재는 품질과 형태 유지를 위해 드라이클리닝이 필수적이다.

필즈엔드는 드라이클리닝 기술 변화도 직접 경험했다. 그는 “초창기에는 등유 같은 기름 성분 용제를 사용했지만 현재는 정제된 석유계 용제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식 드라이클리닝 기계는 대형 세탁기처럼 작동하며, 용제 증기와 스팀·응축 시스템을 이용해 물 손상 없이 의류를 세척한다는 것이다.

그는 12살 때부터 가업을 도우며 업계에 발을 들였다. 옷걸이에서 옷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종이 받침(cardboard saddle)을 끼우는 작업이 그의 첫 일이었다. 그는 “분당 6개까지 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대학 생활도 잠시 경험했지만, 결국 1970년부터 가족 사업에 본격 합류했다. 이후 수십 년간 업계 변화를 지켜본 그는 “고객 1인당 맡기는 세탁물 수량이 예전보다 줄었고, 가정용 세탁기 성능 향상으로 집에서 세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코인 세탁소 사업 역시 팬데믹 이전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블루 리본 클리너는 1929년 엑시터 시 다운타운에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 스토어는 1967년 이사한 곳이다.

그는 특히 1970년대 등장한 폴리에스터 소재를 업계 변화의 상징으로 꼽았다. “폴리에스터는 집에서 세탁하고 바로 입을 수 있었고, 우리 입장에서도 다림질과 마감이 쉬워 노동력이 덜 들었다”며 “하지만 이후 다시 천연섬유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는 직장 여성 고객이 블루 리본의 핵심 고객층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여성들은 정장과 원피스를 입고 출근했고 여성 정장 세탁물이 많았다”며 “지금은 스웨터와 스포츠 재킷, 남성 정장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고객 사연도 쌓였다. 한 고객은 실크 셔츠를 잃어버렸다며 보상을 요구했고, 블루 리본은 결국 배상했다. 하지만 두 달 뒤 고객은 “아들이 셔츠를 캘리포니아로 가져간 사실을 몰랐다”며 사과와 함께 돈을 돌려줬다.

또 다른 고객은 디자이너 청바지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고, 결국 배상까지 이뤄졌지만 몇 달 후 고객은 “외출 전에 청바지를 매트리스 아래 눌러두고 잊고 있었다”며 다시 돈을 가져왔다고 한다.

가장 인상적인 사연 중 하나는 웨딩드레스였다. 몇 해 전 한 신랑이 새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세탁 맡겼지만, 이후 신부의 외도 사실이 드러나면서 누구도 드레스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즈엔드는 “그 결혼은 그렇게 끝났다”며 “신부도, 신랑도 드레스를 원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현재 그 웨딩드레스는 누렇게 변색되지 않도록 보존 처리된 상태로 매장 전면에 전시돼 있으며, 웨딩드레스 보존 서비스의 사례로 활용되고 있다.

증조부부터 조부모, 아버지, 아들 부부, 손녀에 이르기까지 6세대가 함께 블루 리본을 지켜온 만큼, 필즈엔드는 가족과 사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두 아들 모두 이곳에서 아내를 만났다”며 “아무리 힘든 날에도 결국 이곳이 우리 가족을 만들어준 장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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