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원하는가?

우리가 어렸을 땐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 시절의 새해 첫날은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어려운 살림에 흰 쌀 몇 되를 사다가 한 나절을 불려 방앗간에 가져다주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미끈하고 굵은 가래떡이 태어난다.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간장에 푹 찍어서 한 입 가득 꼭꼭 씹으면 그 맛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소고기 기름 동동 뜬 떡국에 통통한 만두가 담긴 떡국은 또 얼마나 맛있었는지. 가마 솥 뚜껑에 돼지기름 넉넉히 둘러 막 부쳐낸 빈대떡의 고소한 냄새는 입안에 군침이 가득 차게 했다. 새해 아침에 또 한 가지 신나는 일이 있었다. 설빔으로 사주신 때때옷을 입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는 일이다. 손님이 많이 오실수록 엄마는 고단하셨겠지만 어린 아이들의 마음은 둥둥 떠올랐다. 세배가 끝나고 방에 들어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면 두둑하게 세뱃돈이 집혔다. 흡족한 마음에 벌어진 입은 귀에 걸리고,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을 듯한 아주 큰 행복감은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요즘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너무 풍족하다. 맛있는 것도 골라 먹고, 옷장에 안 입는 옷으로 꽉 찰 정도로 입을 옷도 많다. 그러나 그때만큼의 기쁨을 누리기가 참 어렵다.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오히려 살이 찔까봐 칼로리가 낮은 것으로 골라 먹고, 몇 년씩 안 입게 되는 옷들은 틈틈이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때가 되었다. 예전의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 갖고 있는 것이 차고도 넘쳐 행복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인간의 기본 욕망 성향 때문이다. (전도서 6장 7절, “사람의 수고는 모두 자기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 하느니라”)

얼마 전 신문에 행복지수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먹을 것이 부족하고 국민 소득이 낮을수록 행복도가 높고, 먹거리가 많고 사회 보장이 잘 된 나라의 행복 지수가 가장 낮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돈과 행복지수는 반비례 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부족함을 통해서 행복감을 얻게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의 어려운 시간을 통해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관계가 좋아졌고 식당이 문을 닫아서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요리해서 먹는 즐거움이 더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바삐 사느라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지만 이번 시간을 통해서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들도 많아졌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가족을 잃거나 비즈니스를 닫아야 하는 고통을 겪은 분들도 많이 계셔서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지만 그분들께도 아픔을 딛고 다시 소망을 가져야 하는 때라고 위로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다.

새해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새 달력으로 바뀌는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너무도 빨리 가는 세월을 또 대충 살게 될까봐 미리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떤 의미로 보면 세월은 빨리 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은 정지되어 있고 우리가 한정된 시간 위를 한걸음씩 내 딛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목표물을 향해 뛰어가는 마라톤처럼,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매일 경주하는 삶의 연결선이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그 걸음의 종류는 다양할 것이다. 마지못해 땅만 바라보고 비척거리며 걸을 수도 있고, 고개를 들고 당당히 앞을 향해 걸어가기도 한다. 거센 바람에 한 걸음 한걸음이 힘들 때로 있겠지만, 때로는 훈풍과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즐거운 걸음이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걸음도 제한되어 있는 우리 삶의 시간의 일부가 된다는 점이다. (전도서 3장 1절,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을 이룰 때가 있나니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어떤 걸음을 걸을 것인지 선택할 것인가? 바로 그 선택이 오늘 이 순간이 행복할 지 불행할 지를 결정해주는 척도가 될 것이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새해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대부분의 새해 계획이 작심 3일로 끝나는 것은, 계획의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게을러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몸이 자주 아픈 사람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새해부터는 하루에 40분씩 꼭 운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하자. 처음에 며칠은 어떻게 해서든지 시간을 내보지만, 며칠 지나 운동을 못하게 될 일이 생기면 다음 날로 미루게 된다. 다음 날은 또 그다음으로 미루는 일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아픈 몸은 건강을 회복할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만다. 중요한 것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 것이다. 30분이 어려우면 단 10분 만이라도 지속하는 성의가 필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두뇌는 우리가 한 행동에 옮긴 시간에 관계없이 자신이 한 행위만을 기억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10분의 운동도 시간에 관계없이 운동을 했다는 사실로만 기억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단 없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감을 갖게 되며, 계획했던 일이 거창한 노력이 따로 필요 없는 습관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계획이 쉽게 무산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삶의 시간이 언제나 넉넉히 남아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이라는 시간의 비중을 매우 낮게 평가한다. 그러나 자신이 내일 이 세상에 있게 될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잠언 27장 1절,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그런 의미에서도 오늘은 그 어떤 날 보다도 소중한 날이다. 상황에 따라서 다시 올수도 없는 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50살이면 지천명(知天命) 이라고 한다. 하늘의 뜻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아마도 사람이 50년은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이치를 스스로 알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꼭 50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20대의 청년기에도 지천명을 알게 되면 매일의 삶이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고, 80대의 노년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항상 수렁 같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전도서 3장 22절,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는 성경말씀은 오늘에 충실함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귀중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021년도 새로운 한해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모든 기억은 지우개로 모두 싹 지워 버리자. 코로나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계속 아파하고 힘들어 하기엔 우리의 삶은 그다지 길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지금 이시간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일궈 나갈 소중한 텃밭이다. 복잡한 상황 전체를 바라보지 말고 그 어느 한 귀퉁이에서라도 다시 소망의 텃밭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을 매일 잘 가꾸다 보면 풍성한 내일, 그리고 미래는 환한 웃음으로 우릴 맞이할 것이다. 어찌 보면 내일은 없다. 다만 오늘 이순간의 연장선일 뿐이다. 행복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내게 허락된 모든 시간 중의 일상들을 낱낱이 감사함으로서 행복을 누려야한다. 그러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모든 행복이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로마서 15장 13절 “소망의 하나님이 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는 성경말씀을 상고하면서 2021 새해는 코로나 상황에 관계없이 지금 이 이 시간을 누릴 수 있음을 감사하면서 소망으로 채우는 복된 한해가 되길 바란다.

월간 세탁인 독자 여러분을 참~~~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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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