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6 Dakota Ave에 자리한 이 세탁소가 문을 열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세탁소가 문을 닫기 전에 손님들이 안 찾아간 옷을 다 찾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르빈 씨는 이미 새 옷을 받지 않고 있다. 그가 드라이클리닝 머쉰을 마지막으로 돌린 것이 6월 11일이었다. 이제는 손님들이 안 찾아간 옷들을 빨리 찾아가 주기만 바랄 뿐이다.
두 부부는 손님들에게 옷을 빨리 찾아가라고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이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캐롤 씨는 “(어떤 때는) 전화가 끊겼고, 내가 번호를 잘못 기록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받을 때도 있다 – 어떤 사람은 페이스북에서 찾았다”고 말한다.
아직도 세탁소에 걸려 있는 옷이 많은데 손님들이 다 찾아갈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한 번은 7년이나 있다가 옷을 찾아간 손님도 있었다. 물론 이제는 7년을 기다릴 생각이 없다.
앨 르빈 씨(76)는 “옷 중에는 3년, 4년 된 것들도 있다”고 말한다.
부부는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을 이미 판매한 상태이다.
70년 역사
르빈 클리너는 1951년부터 같은 건물에서 영업을 해왔다. 세탁소는 아버지 에드 르빈 씨와 어머니 에이더 씨가 차렸는데 당시 앨은 7살이었다.
미주리 태생인 아버지는 1934년 수시티로 왔고 1938년 사우드 수시티로 와 1930년대 말 또는 1940년대 초에 드라이클리닝 비즈니스에 입문했다. 앨은 당시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확실치는 않다.
그가 기억하는 바로는 아버지가 펄 스트릿에 자리한 쿠색-바우만 론드리 & 드라이클리너에 찾아가 일자리를 달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무경험자는 필요가 없다는 거절을 받았다.
앨 르빈 씨는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서서 나가다가 뒤돌아서 ‘이렇게 하면 도대체 어떻게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까?’라고 따졌다”라며 “그러자 사장이 ‘너 정말 일하고 싶구나?’라고 답했다”고 한다.
덕분에 아버지는 이 세탁소에서 일을 시작했고, 웨스트 7th 스트릿에 자리한 다른 세탁소에서도 일한 후 자신의 세탁소를 차렸다. 아버지는 르빈 세탁소를 개업한 후 1968년 57세로 운명할 때까지 가게를 지켰다. 어머니는 그 다음 해에 59세로 남편의 뒤를 따랐다.
앨은 “세탁소에서 자라다시피 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가게를 물려받았고, 아내는 “카운터 종업원이 하도 그만 두는 바람에” 1972년부터 카운터를 보았다.
오랜 불황에 시달려
앨과 캐롤 씨가 세탁소를 이어받았을 때가 이미 세탁소 불황이 시작된 후였다. 그전에는 수시티에 세탁소가 12~15개 정도 있었다는데, 이제 르빈 클리너가 문을 닫으면 사우드 수시티에는 세탁소가 없고, 수시티에만 2개가 남게 된다.
팬데믹은 세탁소 영업에 더 큰 타격을 입혔다. 사람들이 집에만 있으니 드라이클린할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르빈 씨 부부는 하지만 세탁소를 근근이 끌어올 수 있었다. 앨 씨는 아직도 아버지가 1965년 무렵에 구매했던 휩쉬와 솔-빅 머쉰을 사용하고 있다.
앨 씨는 솔벤트, 미네랄 제품 그리고 탄소를 이용한 자신만의 비법으로 세탁을 한다. 앨 씨는 발암성이 있다고 의심받는 펄크 솔벤트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 기계는 아직도 쓸 수는 있지만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 이 기계를 돌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앨 씨밖에 없다.
그는 “기계가 워낙 오래됐고 고장 난 부품도 많아 수동으로 돌려야 해 나 말고 이 기계를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