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까마귀 한 마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흰 눈처럼 고운 자태를 자랑하는 백조를 만나면서 마음속에 알 수 없는 회의감과 부러움이 생겨났다. 까마귀는 백조에게 다가가 “나는 새카맣게 생겼는데 당신은 그리 곱게 생겼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새겠네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백조는 씁쓸히 웃으며 “나보다는 두 가지 아름다운 색을 가진 앵무새가 더 행복하겠지요”라고 대답했다. 까마귀는 앵무새를 찾아가 똑같이 말했지만, 앵무새 역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작을 만나기 전까지는 정말 행복했지요. 나는 두 가지 색밖에 없는데 수많은 현란한 색을 가진 공작을 보고 나니 내 모습에 실망하게 되고 우울해지더군요.”
그 말을 들은 까마귀는 수많은 색을 가진 공작을 만나기 위해 동물원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이 공작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고 에워싸고 있었기에, 까마귀는 동물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오래도록 기다려야 했다. 어렵사리 만난 공작에게 까마귀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당신을 보러 오겠네요. 나를 보면 곧바로 쫓아버리려고 하는데, 당신에게는 그러지 않으니 당신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새입니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공작은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내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아름다움 때문에 나는 이렇게 동물원에 갇혀 있답니다. 까마귀를 새장 안에 가둬놓는 경우는 없잖아요. 그래서 나는 늘 내가 까마귀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죠.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 까마귀의 여정과 닮아 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나와 다른 사람의 겉모습을 비교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가진 소중한 평안과 자유를 잊어버린다. 내가 가진 자유로운 날개는 보지 못한 채 타인의 화려한 깃털만을 부러워하다가 스스로를 불행의 새장에 가두고 마는 것이다. 영국의 런던타임스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주제로 흥미로운 여론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신문사는 행복할 것으로 예상되는 여러 사람의 리스트를 제시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행복 순위를 매기도록 했다. 조사 결과는 대다수 사람의 예측을 완전히 벗어났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정치인, 재벌, 귀족, 박사 등 권력과 부를 가진 부류는 상위권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3위는 섬세한 공예품을 완성하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휘파람을 부는 목공이었다. 2위는 아기를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몸에 분을 발라주며 기쁨으로 웃는 어머니였다. 그리고 대망의 1위는 모래성을 막 완성한 어린아이가 차지했다. 우리는 1등을 한 사람이 모래성을 쌓은 어린아이라는 사실에 깊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래성은 말 그대로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는 모래성이다. 아이는 작은 파도가 밀려오면 그 성이 바로 허물어진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모래를 그러모아 성을 쌓는다. 멋진 도면이나 거창한 계획이 애초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한 움큼씩 손에 쥐어 모래를 쌓는 그 과정 자체에서 순수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짓다 보니 담장도 생기고 꽃밭도 만들어지며, 어느 순간 마음에 꼭 드는 모래성이 완성되었을 때 환호성을 지른다. 결과물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이 담겨 있지 않은 순전하고 맑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야말로 참된 행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남북전쟁 당시 이름 모를 한 병사가 남긴 시 역시 이러한 삶의 이치를 깊이 있게 일깨워준다.
“나는 하나님께 성공할 수 있는 강함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약하게 함으로 겸손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약함을 주셨습니다.
나는 행복에 필요한 많은 돈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난함을 통해 진짜 행복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나는 삶을 누릴 수 있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삶을 주시고 모든 것을 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부탁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주님은 나의 기도를 모두 들어주셨고,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병사의 기도처럼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건강, 부유함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시련과 부족함 속에서 겸손을 배우고, 진정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것이 삶의 커다란 축복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외형적인 조건 대신, 삶 자체를 누릴 수 있는 유연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선물로 주신다.
행복이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것은 바로 내면에서 샘솟는 설렘, 기쁨, 환희 같은 느낌이다. 위대한 음악가 하이든(Haydn)의 음악을 들어보면 그의 모든 곡이 즐거움과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유튜브를 통해 하이든의 곡을 감상해 보면 가슴이 설레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행복감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하이든의 ‘세레나데’와 ‘종달새’는 결혼식을 비롯한 여러 연회장에서 배경음악으로 자주 연주되는 친숙한 곡이다. 어느 날 사람들이 하이든에게 어떻게 그렇게 늘 기쁨이 넘치는 곡을 작곡할 수 있느냐고 그 비결을 물었다. 그때 하이든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이 항상 내 가슴을 뛰게 하신다. 그러므로 나의 음악도 항상 기쁨에 뛰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항상 나를 사랑해주신다. 그러므로 내게서 슬프고 불행한 노래가 만들어질 수 없다.” 하이든의 고백처럼 우리의 마음을 만지셔서 행복을 빚어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다.
벌써 가을이 깊어간다. 창밖에 나뭇잎들이 황금빛과 붉은색으로 물들어가고 언제나 푸르를 것만 같던 나뭇잎들도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곧 차가운 서리가 내리면 가을 나무들은 미련 없이 입고 있던 모든 옷을 훌훌 벗어 던질 것이다. 우리 역시 그 나무들처럼 땅 위에 쌓아둔 모든 것을 뒤에 남겨두고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살아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우리가 지금 쌓고 있는 삶이라는 이름의 모래성이 언젠가 예고 없이 밀려올 인생의 파도에 스러져 갈지라도, 우리는 모래성을 쌓는 일 자체를 멈출 수는 없다. 그러므로 결과를 만들어가는 그 여정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이어야 한다.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의 행복은 탐욕이 없는 순전함에서 비롯되었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이러한 순전함을 유지하며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도우심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될 것이다. 비교하는 마음에서 불행이 싹트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순전함 속에서 참된 행복이 피어난다. 남과 자신을 끊임없이 견주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삶은 결코 평안을 누릴 수 없다. 자신이 이미 누리고 있는 자유와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 화려한 겉모습을 가졌더라도 화려한 새장에 갇힌 새와 다를 바 없다. 참된 행복은 타인의 시선이나 거창한 세상적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고 현재의 삶을 긍정하며 감사하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성경 잠언 8장 17절에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라는 말씀이 있고, 로마서 14장 17절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는 말씀이 있다. 세상의 물질이나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헛된 만족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강과 희락을 마음에 품자.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그분께 전적으로 맡길 때, 비로소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참된 행복을 발견하는 복된 10월이 되기 바란다.
월간 세탁인 독자님들을 참~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