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물김치 병 이야기

심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네 가지로 반응한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나는 잘했고 당신은 잘못했다,” 두 번째는 “당신은 잘했고 나는 잘못했다,” 세 번째는 “서로 잘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서로 잘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벌어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잘못했다”고 말하면 상황은 쉽고 빠르게 수습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이 깊어지고 더욱 친밀한 관계로 발전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첫째의 나만 잘했다고 한다면 상대는 언제나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도 항상 잘할 수만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잘했다고 우기면 상대방은 화가 솟구친다. 둘째로 항상 상대만 잘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래도 저래도 잘했다고 말해주는 대상은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뿐이므로 상대방을 성숙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 번째로 모두가 잘했다면 특별히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네 번째로 서로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누가 더 잘못했는지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데도 상대방의 입장이나 행동에 대해 전적으로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고 배려해 주게 되는 것이다.

 

옛날 어느 고을에 나이 어린 처녀가 시집을 왔다. 시어머니는 건넛마을에 사는 어른들이 새 며느리도 볼 겸 집에 오시기로 했다며 쌀을 씻어서 가마솥에 안쳤다. 그리고는 며느리에게 장작불을 잘 지피라고 이르고 밭에 김을 매러 나갔다. 며느리는 아궁이 앞에 앉아 땔감을 넣기 시작했다. 매콤한 연기가 뽀얗게 일어나 눈이 매웠다. 그렇지만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그냥 앉아 있기가 지루한 며느리는 불쏘시개로 타고 있는 장작을 살짝 들어 올려 보았다. 그러자 예쁜 불꽃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재미있는 불장난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가마솥에서 찌직 찌직 소리가 나더니 밥 타는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솥뚜껑을 열어 보니 밥은 이미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며느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식구들은 물론이고 건넛마을에서 오실 어른들의 밥을 고스란히 망쳐 놓은 것이다. 어린 며느리는 그만 부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때 시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오셔서 며느리가 엉엉 울고 있는 것을 보시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얘야, 무슨 일이냐?” 며느리는 차마 대답을 못 하고 손으로 가마솥을 가리키며 계속 흐느꼈다. 시어머니는 솥뚜껑을 열어 보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며느리의 등을 다독거리며 말씀하셨다. “아가야, 네 잘못이 아니다. 내가 나이가 들어 이제 눈이 어둡다 보니 밥물을 너무 조금 넣었구나.” 그러자 조금 뒤 아들이 집으로 들어오다가 이 광경을 보고 말했다. “아이쿠, 아침에 제가 물을 더 많이 길어다 놓았어야 했는데 물이 모자라서 그랬나 봐요. 제 잘못이에요.”

식구들이 모여서 웅성거리자 사랑채에 계시던 시아버지가 나오셨다. 그리고는 새아기는 부엌 바닥에 앉아 울고 있고 부인과 아들이 서로 자기 잘못이라고 하니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시어머니에게서 자초지종을 다 들은 시아버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아가야 인제 그만 울어라. 모두 내 잘못이다. 늙은 내가 아침에 근력이 부쳐서 장작을 굵게 패 놓았더니 불이 너무 과해서 밥을 태웠구나”.

사람들은 누구나 매 순간 자신과 자신의 입장을 보호하려고 하는 타고난 본능이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당하는 입장의 사람은 언제나 피해를 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 대부분은 잘-잘못의 경우를 가리기 전에 우선적으로 자신만을 보호하려고 한다. 누가복음 6장 41절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말씀처럼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수습할 때 문제 해결은 쉬워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얼마 전 친구가 한동안 남편과 냉전했던 스토리를 얘기했다. 하루는 친구 남편이 주스를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냉장고 선반에 놓여 있던 물김치 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김치 병은 산산조각이 나고 시큼하게 익은 물김치 국물은 냄새를 피우며 부엌 온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친구 남편은 “도대체 김치 병을 어떻게 놓은 거야?”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신이 조심하지 않아 떨어졌는데 왜 나에게 화를 내요? 뭐든지 잘못되면 나한테 뭐라고 하는 버릇도 좀 고쳐요! 내가 무슨 동네북인가”라고 반박하며 그동안 쌓였던 억울함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흩어진 김치를 줍고 국물을 닦기 시작했다. 친구의 반박에 더 화가 난 남편은 “이렇게 뒤죽박죽이니까 김치병이 떨어지지, 이건 뭐야? 저건 또 뭐야?” 하면서 남은 음식과 먹을 수 있는 채소까지도 마구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 동안 김칫국물을 닦아내면서 사실 요즘 바쁜 일들로 냉장고를 정리하지 않아 김치병이 불안정하게 올려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김치 병이 깨진 것은 자기 잘못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남편의 심한 핀잔에 상한 마음은 갈수록 뾰족해졌다. 그 후에도 며칠 동안 부엌 바닥에서 나는 시큼한 신김치 국물 냄새만큼이나 냉전도 계속되었다. 마음 불편한 시간이 계속되면서 친구는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물김치 병이 떨어졌을 때 “냉장고 정리를 진작 했어야 했는데 내 탓이에요.”라고 오히려 사과했었다면 남편은 자신의 부주의함을 미안해하며 냉장고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을 것이다. 자신이 잘못했음에도 남편에게 반박함으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한동안 불편하게 지낸 것을 후회하였다. 며칠 후 친구는 삼계탕을 정성껏 끓여 화해의 손짓을 보냈고 너무 맛있다는 남편의 칭찬으로 며칠간의 냉전은 따뜻하고 화창한 기류로 바뀌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쉽게 말하면 한 번 길들여진 말과 행동의 습관은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해서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프로이드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말과 행동 이면에는 무의식이 간섭한다고 한다. 그것은 무의식의 바탕에 오랜 시간 동안 습관으로 굳어져 온 생각이나 행동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잠언 4장 24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서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라는 말씀처럼 말과 행동의 바탕이 되는 마음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가지냐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백신접종으로 코로나가 안정되는 듯하더니 다시 델타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지구촌 곳곳에서 물난리와 우박, 화산 폭발 소식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이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지만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의 입장으로 배려하고 사랑할 때 이 어려운 시간을 잘 견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골로새서 3장 13절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는 성경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모두 함께 더욱 사랑하는 8월이 되면 좋겠다.

월간 세탁인 독자님들을 참~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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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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