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보약은?

이제 90이 되신 할머님, 그분은 만석꾼 집안의 고명딸이다. 곳간에는 계절마다 먹거리가 넘쳤고 행랑채엔 일꾼들로 시끌벅적했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 사랑채엔 다과상을 차려 내가는 행랑어멈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위로는 오빠들이 여럿 있었고 외동딸 할머님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여자는 교육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뜻이 완고해서 학교엔 갈 수 없었다. 오빠들의 어깨너머로 한글을 깨우친 것이 그분이 받은 교육의 전부였다. 안타깝게도 딸도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아버지를 설득하던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셨다. 할머님이 18살 되던 해 아버지는 장성한 아들이 있는 같은 동네의 양반과 장기를 두다가 사돈을 맺기로 결정했다. 할머님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총각과 결혼식을 했다. 시집을 가보니 남편은 올망졸망한 시누이들이 다섯이나 있는 가난한 집의 독자였다. 시집오기 전에는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았지만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양반의 며느리가 되었다. 할머님의 고단한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벽부터 한참을 걸어나가 우물을 길어서 머리에 이고 오다 보면 물동이의 물이 출렁거려 반은 길에다 뿌리기 일쑤였다. 여린 손으로 장작을 패서 밥을 지어야 했고, 겨울엔 거북이 등짝처럼 손등이 터진 채 냇가에 가서 빨래했다. 죽을 것만 같은 지난한 삶, 그 와중에도 아기는 생겼다. 먹지 못해 몸은 더 말라갔지만 달이 찰 수록 배는 남산처럼 불러 왔다. 아이를 난 후엔 일은 더 많아졌고 예기치 않은 고난이 추가되었다. 딸을 셋이나 줄줄이 낳은 것이다.

시어머니는 딸만 낳고도 무슨 염치로 미역국을 먹느냐고 호통을 치고 동네 사람들 앞에서 무시하고 면박을 주었다. 구박은 더욱 심해졌고 딸만 낳는 할머님은 따뜻한 미역국 한 모금조차 얻어먹을 수 없었다. 산후조리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거꾸로 들어선 아기를 낳느라 생사가 오락가락 한 적도 있었다. 죽을 만큼 아픈 고통으로 겨우 몸을 푼 다음 날도 새벽이면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엄동설한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을 맞으며 물을 길어다 밥을 지어 시부모님과 어린 시누이들, 그리고 자신이 낳은 세 딸을 부양해야 했다. 하늘이 불쌍히 여겼는지 4번째로 아들을 낳았다. 할머님은 아들을 바라보며 모든 시름을 잊었다. 세월이 지나고 딸 둘을 더 낳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남편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가난한 살림과 6남매, 그리고 시누이 다섯 명과 시어머니, 그들은 모두 할머님만 바라보고 있었다.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친정은 부자였지만 출가외인이라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남의 집에 가서 빨래하고 부엌일을 해서 먹을 것을 얻어 오기도 하고, 오뉴월 뙤약볕에 현기증이 나서 쓰러지면서도 몇 푼 안 되는 품삯을 받으려 밭일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아들은 공부를 잘했고 학교에서 주는 상은 모두 받아왔다. 아들 자랑에 고통도 다 잊을 수 있었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아들을 남편 삼아 기대고 살았던 할머님은 너무 섭섭했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서 교수가 되면 그때 효도를 받으리라 기대하면서 또 세월을 보냈다. 아들은 외국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매달 어머니께 생활비를 보내 드리고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이 아들이 할 수 있는 효도의 전부였다.

문제는 아들이 할머님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자주 다투게 되는 일이었다. 연세가 들어갈수록 할머님은 과거에 집착하셨고 억울해하셨다. 고생이 너무 심했던 얘기, 자식들에게 섭섭했던 일들을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다가 그것은 자신을 힘들게 했던 대상들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아들도 처음엔 잘 들어 드리다가 싫은 소리가 반복되면 인제 그만하시라고 짜증을 냈다. 그 말에 상처를 받은 할머님은 섭섭해서 울기도 하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할머님의 섭섭함과 미국에 있는 아들의 짜증은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님이 몹시 편찮으셔서 거동도 어려우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들은 불현듯 어머님을 더는 뵙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과감히 한 달 휴가를 내고 어머니에게 갔다. 할머님은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고 오랜 병고로 많이 야위셨다. 아들은 할머님이 좋아하시는 우족을 사다가 푹 고았다. 어려운 시절, 우족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할머님은 어쩌다 곗돈이라도 타면 우족을 사 와서 끓이셨다. 자신은 비위가 상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묻지도 않은 말씀을 입속으로 우물거리며 어린아이들만 먹였다. 아이들은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아들은 우족을 끓이면서 뽀얗게 우러난 국물 위로 어린 시절 할머님이 설거지하시며 대접마다 조금 묻어있는 우족 국물을 여러 번 헹궈서 드시는 것을 훔쳐본 기억이 떠올랐다. 아들의 눈물이 우족탕 위로 후두두 떨어졌다. 할머님은 아들이 끓여준 우족탕을 맛있게 드시고 조금씩 기운을 회복하셨다. 할머님은 정말 우족탕만 좋아하시는 것처럼 계속 드셨다. 아들은 우족탕 끓이는 일을 계속했다. 그것을 끓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잡내가 나서 비위가 상했다. 아들은 우족탕 잘하는 집에 가서 맛있게 끓이는 노하우를 물으니 무엇보다도 센 불로 적정 시간을 끓여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너무 빨리 끓어 혹시 쫄아 버리거나 탈까 봐 온 정성을 들였다. 우족을 가스 불에 올려놓고 부엌을 들락 리며 틈틈이 할머님과 얘기를 했다. 기운이 조금씩 나신 할머님은 과거에 있었던 한 많은 넋두리를 반복하셨다. 몇 시간이고 매일 우족탕을 끓이면서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들어드렸다. 더는 같은 소리 자꾸 하신다고 면박을 드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수고하셨다고, 애쓰셨다고 고맙다는 말도 말씀 중간중간에 추임새 삼았다. 그저 지금까지도 건강하신 것만도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님은 나날이 원기가 회복되셨다. 조금씩 바깥나들이도 하실 만큼 건강이 회복되셨다. 우족탕을 끓인 지 한 달이 되었다. 그것은 최고의 보약이었다. 또한, 그 기간은 오롯이 할머님과 아들만의 시간이 되었다. 과거의 아픔에서 떠나지 못했던 할머님은 어느 순간부터 고통스러웠던 옛날얘기를 하지 않으셨다. 하루하루가 기쁘고,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노라며 열여섯 살 소녀같이 발그레한 미소를 띠며 즐거워하셨다. 아들은 할머님께 내년에 다시 한 달 휴가를 내서 오겠다고 안심을 시켜드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이 돌아오자 며느리는 할머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할머님은 아들이 이렇게 잘 해 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셨다고 좋아하셨고, 며느리에게 아들을 한 달이나 자기와 함께 지내게 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 아들은 내 친구의 남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모두 늙어간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현저히 나빠져 금방 한 얘기를 잊어버린다. 그 현상은 벌써 오십만 넘어도 많이 경험하는 일이다. 또한, 섭섭하고 노여운 마음도 커진다. 자꾸 약해지는 까닭이다. 당찼던 젊은 날은 기억 속에만 있을 뿐 자녀들의 관심과 사랑을 고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가엽고 측은하게 느낄 뿐이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머지않은 날, 할머님의 얘기가 나의 얘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가슴에 스산한 바람이 한 가닥 지나가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것은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 아들이 한 달 동안 계속 끓인 우족탕,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것은 참을성과 끊임없는 배려를 필요를 한다. 우족탕으로 갚아야 할 사랑의 부채가 있는지, 치유해 주어야 할 상처의 빚이 있는지 한번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그 대상 중에 부모님이 계신다면 빨리 시간을 내야만 한다. 그분들이 기다려 줄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한정된 우리의 삶은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사랑만 나누고 살기에도 짧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4월의 봄날처럼 가장 아름다운 말은 바로 사랑이다. 10장 1절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요한복음 13장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는 말씀은 마음에 새기고 최고의 보약으로 더 많은 베풀고 나누는 따뜻하고 포근한 4월이 되면 좋겠다.

월간 세탁인 독자님들을 참~~ 많이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하하!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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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남

필자는 다이아몬드 컴퓨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는 (224) 805-0898로 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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